(이명박 리더십)②CEO식 '용인술' 주목하라

by좌동욱 기자
2008.02.25 11:13:00

흑묘백묘론..능력있으면 누구든지 쓴다
내부 경쟁 유도..가신·측근 그룹 없어
대통령에 업무 쏠려..참모간 과열 경쟁

[이데일리 좌동욱기자]지난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선대위는 '문턱이 낮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능력만 있으면 과거를 따지지 않고 기용한다는 이명박식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이었다. 쥐만 잘 잡으면 됐지, 고양이의 털색깔이 검든, 희든 상관 않겠다는 인식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돌아온 올드보이` 등 다양한 인재들이 포진했다.

참여정부를 이끈 노무현 선거캠프와는 달리 이명박 캠프에는 정치적 이념이나 역사적 경험을 기반으로 뭉치는 정치인들의 공동체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지지선언이 잇따르면서 이명박 후보의 정치적 기반은 더욱 강화됐고 결국 박근혜라는 큰 산을 넘으며 대선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로서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을 써야할 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리더십의 요체는 용인술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용인술'에 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대통령의 용인술이 기업 인사 시스템을 닮았다는 점도 공통적인 분석이다. 실제 서울 시장, 대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을 되돌아보면 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 체득한 이명박 대통령의 '용인술'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 대선캠프, 인수위원회, 내각 등 그동안 진행된 인사를 살펴보면 이 대통령은 소속 조직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피'를 대거 수혈했다.

이번 조각 인선에서도 15명의 국무위원 중 '개국 공신'이라고 일컫을 수 있는 사람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유일하다. 한승수 총리 내정자의 경우 "(대통령과 함께 일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총리로 지명된 것에 대해 굉장히 놀랐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CEO가 양질의 상품 팔아서 이윤 창출하려면 부지런히 뛰고 변화해야 한다"며 "새 정부의 파격적인 조직 개편안이나 파격 인사 등에서 그런 점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경력, 학벌, 연고, 연령 등 통상의 인사에서 고려해왔던 사안들을 잘 따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는 저서에서 밝힌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2002년 서울시장 취임식 날 서울시 고위 간부가 '살생부'를 내밀었지만, 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살생부는 시장 선거 때 상대편을 도운 명단이었다.  총리 인선 당시 한승수 총리 내정자의 나이와 역대 정부의 경력을 문제 삼았던 한 측근은 "일만 잘하면 됐지, 뭘 그렇게 따지냐"는 면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탓에 '이명박호'에는 '가신'이나 '측근'이 없다. 능력은 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아닌 '일'중심으로 재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8일 워크숍에서 "앞으로 내각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대해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평가하는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기·연간 단위로 인사를 평가하는 기업 시스템을 정부에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조직내부에 경쟁을 유도, 성과를 극대화하는 인사 시스템도 기업을 본 딴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사석에서 "당선자는 중요한 사안일 수록 여러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린다"고 말한 바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확산되면서 국내 주가가 폭락했을 때 이 당선자는 서로 다른 3개그룹으로부터 각각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을 따로 불러 견해를 물었다.

이런 시스템에는 '2인자'가 없다. 실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선 최대 공신이었던 모 의원은 인수위, 내각, 청와대 어디에서도 중용되지 않았다. 그가 인사에 관여한다는 정보를 접했던 이 당선자가 직접 2선으로 뺐다는 '후문'이다.



2인자가 없는 일중심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은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업무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최진 연구소장은 "CEO식 리더십은 효율적이고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가 단위로 확대 적용할 경우 업무 과중이 생긴다"며 "특히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대통령에게 직접 쏠린다"고 지적했다. 결정 권한을 아래로 위임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과 참모진에게 일이 몰린다는 설명이다.

워크홀릭 대통령의 지나친 일욕심은 일선의 피로감을 누적시킬 수도 있다. 인수위가 끝날 무렵 인수위원과 워크숍에 잇따라 참석해 2번이나 마라톤을 했던 한 장관내정자가 업무보고를 위해 찾아온 실무자들에게 "내일 하자"며 미뤘다는 얘기도 있다. 여유를 갖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장관과 참모들을 돌려서는 국정을 생산적, 효율적으로 끌고 갈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참모들간 충성 경쟁이 벌어질 경우,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 당선자는 가까운 사람의 배신으로 두번이나 중대한 고비를 겪었다. 지난 95년에는 비서였던 김유찬씨가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상대진영에 알리는 바람에 국회의원 배지를 떼야 했으며 지난해 대선에서는 2000~2001년 당시 '동업자'였던 김경준씨 때문에 집중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