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아리’역 강혜정

by조선일보 기자
2006.04.19 10:03:53

“여자가 사랑받는 건 권리예요, 권리”
“함께 연기한 실제 연인 조승우는 참 빈틈없는 배우…치열교정, 말 많지만 어차피 나는 나”

[조선일보 제공] 착시현상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커피 잔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미술관 카페의 잔이 유달리 큼지막하기도 했지만, 터무니 없이 작은 얼굴 탓이다. 조승우와 함께 찍은 멜로 ‘도마뱀’(27일 개봉)에서 18년 동안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아리’ 역의 강혜정이다.

“재작년인가 태국에서 CF를 찍을 때였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맡에 도마뱀이 죽어 있는 거예요. 내 무거운 머리에 눌려 죽었을까요?”

좋아하는 남자를 애태우며 반복해서 사라지는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처럼, 그녀는 시작부터 엉뚱한 소리를 하며 달아났다. 마치 꼬리를 끊고 사라지는 도마뱀처럼.

‘도마뱀’은 사랑에 관한 판타지. 강혜정의 입을 빌리면, 18년 동안 한 여자를 좇는 남자와 18년 동안 한 남자만 그리워하는 여자의 로맨스다. 부엉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중고등학교 때 여학생들의 판타지 같은 영화죠. 왜 계집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수다 떠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사랑이야기 같은.”

“그런 판타지를 믿는 캐릭터였냐”는 냉소에는 “현실의 사랑이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여자들은 그런 꿈을 가질 권리, 사랑 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어요”라며 미소 짓는다.

친부(親父)와 정사를 치러야 했던 ‘올드보이’의 미도, “50만원만 줘요, 자 줄게”라고 도발하는 ‘연애의 목적’의 홍, 그리고 “내 참 빨라”라고 무구한 웃음을 짓는 ‘웰컴투 동막골’의 여일까지. 지금까지 강혜정은 ‘불량’과 ‘백치’ 사이를 왕복해왔다. 극단을 가로지르는 그녀의 캐릭터는 스물네 살 나이에 비해 도드라진 서명을 충무로에 새겼지만, 동시에 일상 속에서의 강혜정 연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컬러렌즈는 땅에 떨어져도 금방 찾을 수 있죠. 하지만 ‘도마뱀’에서 제가 맡은 아리는 색이 없는 콘텍트렌즈였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그 렌즈를 찾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제 숙제였죠.”

‘도마뱀’에서 강혜정은 처음으로 일상의 다리를 건넌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초밥을 먹고, 산딸기주를 마시며, 자꾸만 도망쳐야 하는(그 이유가 이 영화의 모티브 중 하나다) 찰나의 감정들. 연기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그런 점에서 강혜정의 연기는 ‘도마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도마뱀’은 제작 발표 시점부터 조승우·강혜정 두 실제 연인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뿌렸다.


▲ 올해 초 역삼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강혜정은‘도심 속 비밀의 화원’같던 가회동 한옥에서 살았다.‘ 도마뱀’은 그때 선택한 작품. 비밀을 품고 있는 여인‘아리’는 그 가회동 비밀의 화원에서 태어났다.

연기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에는 다시 꼬리를 잘랐지만, ‘배우 조승우’에 대한 평가는 거의 경배 수준이다. “이 배우, 빈틈이 없구나, 했어요. 머릿 속에 있나 봐요. 장면 장면에 대한 계산이. 영화 속에 키스 장면이 있어요. 저는 좀 더 감정을 내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감정을 눌러야 한다고 막더라고요. 처음에는 제 고집대로 촬영했지만, 나중에는 오빠 의견을 따랐어요. 다시 찍은 장면을 보니, 오빠 말이 맞더라고요.”

달라진 얼굴 때문에 네티즌들을 바쁘게 했던 최근의 소동을 꺼내자, 그녀는 “턱수술했다는 말도 나온다면서요?”라고 되묻는다. “촬영 때문에 교정기를 꼈다가 뺐다가 했더니, 치열이 망가지고 잇몸 일부까지 내려 앉았대요.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치열교정을 했을 뿐이에요. 6개월 정도 걸린다네요. 찬반 논란까지 있다지만, 저는 크게 신경 안 쓸래요. 어차피 저는 전데요, 뭐.” 꼬리를 끊은 ‘아리’가 다시 커피 잔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