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에 젖고… 역사 향기에 취하고
by조선일보 기자
2009.06.26 12:20:00
주머니 가벼워도 갈 수 있는 서울 창포원·도봉서원
■식물생태원 서울-창포원 130여종 30만본 붓꽃류 식물 습지원·산책로… 생태학습장
■도봉산 도봉서원-정암 조광조 기려 세운 서원 계곡 물소리따라 더워도 싹~
[조선일보 제공] 눈이 휘둥그레질 볼거리는 바라지 말자. 이 여행은 건강한 자연, 잊혀진 고즈넉함을 찾아가는 순례다. 주머니는 가벼워도 녹음을 사랑하는 그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을 경배하는 그대, 아이들이 올망졸망 딸린 그대에게 이 순례를 권한다. 중랑천 옆 식물생태원 '서울창포원'과 도봉산 자락 '도봉서원(道峰書院)'을 찾아, 푸르게 주말을 보내는 길이어서다.
작은 생명의 아름다움, 그들을 품은 산의 인자함을 느낀다면 의미는 배가된다. 간단한 도시락과 물병, 손수건을 넣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 딱히 돈 들 일도 없다. 서울창포원과 도봉서원은 고맙게도 입장료가 없어, 1·7호선 도봉산역까지 오갈 지하철 삯만 준비하면 된다. 도봉서원에 가려면 적어도 왕복 1시간쯤은 걸어야 해 바닥이 든든한 신발을 신는 게 좋겠다. 여름철 야외에 나서는 길이니 모자도 쓰자.
도봉산역 2번 출구를 나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 떼면 곧 횡단보도 건너편에 대나무로 만든 작은 담이 보인다. 꽃들이 오롱조롱 피어 있는 담엔 '서울창포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지난 7일 도봉동 5만2417㎡ 터에 '붓꽃'을 주제로 삼아 개원한 식물생태원이다. '서울 아이리스 가든'(Seoul Iris Garden)이란 영어 이름도 예쁜데, 이름답게 붓꽃·꽃창포·노랑꽃창포·부채붓꽃·타래붓꽃·범부채 등 130여종 30만본(本)의 붓꽃류 식물이 자라고 있단다. 개원한 지 한 달도 안 돼, 입구 쪽 방문자센터 시설이 깔끔하다.
| ▲ ‘서울창포원’의 습지원을 가로지르는 관찰데크 위 쉼터에서 관람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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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 오른편 길을 골라 붓꽃원으로 접어들면 눈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빛이 펼쳐진다. 길고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은 붓꽃 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불면 녹색 함성이 일듯 이파리들이 우르르 흔들린다. 붓꽃이 피는 철은 5월 즈음이라 대부분 푸른 잎뿐이고, 물가에 선 몇몇 이단아들만 보라색 꽃을 피웠다. 내년 5월 꽃피는 때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지만, 꽃이 드물어도 이리저리 풀들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충분히 즐겁다.
붓꽃원 가운데엔 습지원이 있어, 여기서 출발한 수로가 붓꽃원 여기저기를 휘감아 돈다. 군데군데 졸졸 흐르는 물 위로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데, 징검다리 위에서 고개를 돌리면 도봉산·수락산 봉우리가 얼추 다 보인다. 습지를 가로질러 놓인 관찰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하얀 파라솔과 테이블이 놓인 쉼터가 나오는데 물 위에 앉아 바람 쐬는 기분이 그럴듯하다. 습지원 쉼터에서 중랑천 쪽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책 읽는 언덕'이 있어, 나무 그늘 아래서 다리를 쉴 수 있다.
정문 왼편은 침엽수가 주를 이룬 '늘푸름원'과 '억새원' '수변식물원' '약용식물원' '천이관찰원' '산림생태관찰원' 등으로 꾸며져 있어 아이들 생태학습에도 좋다. 정문을 지나 쭉 걸어가면 꽃으로 꾸며진 작은 나무다리(木橋)가 나오는데 이 부근도 사진이 잘 나온다.
도봉산계곡 옆 도봉서원은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1574년 창건된 유서 깊은 곳이다. 시민들 기억 속에 오래 잊혀져 있던 것을, 지난 18일 서울시가 시 지정문화재 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 물 맑은 도봉산계곡을 사랑해 자주 찾았던 정암 조광조를 기려 세운 서원인데, 그 뒤 우암 송시열도 함께 배향됐다. 선조가 이름을 내리고 영조가 친필 현판을 준 어필사액서원(御筆賜額書院)으로, 주변 계곡에는 유학자들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 각석군(刻石群)도 있다.
도봉서원은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있다. 도봉산역 1번 출구로 나가 도봉산을 20분쯤 등산 아닌 등산을 해야 하는데, 길이 평탄해 그리 힘들지 않다. 도봉산 입구에서 탐방로 지도를 확인한 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된다. 도봉산 입구엔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도봉서원에 배향된 송시열의 글씨다. 끊임없이 햇빛이 반짝이는 계곡물은 투명한데, 국립공원 안이라 들어갈 수 없다. 도봉서원은 광륜사와 쌍줄기약수터를 지나서 있고, 산길을 들어서면 헷갈리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