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장조사 업체 “화웨이 제재로 반도체 70억 달러 손실”
by김현아 기자
2020.06.17 08:24:13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화웨이 제재가 결국 미국 반도체 업계에 심각한 피해를 줄 뿐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최근 ‘화웨이 제재: 통신, 글로벌 반도체 및 미국경제에 미칠 악영향’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국 반도체 업계가 화웨이 제재로 인해 약 70억 달러의 사업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에 화웨이는 큰 손이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브로드컴의 연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8.7%(20억 달러)이며, 인텔은 최소 15억 달러의 데이터센터 칩을 매년 화웨이에 판매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화웨이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화웨이는 매년 200억 달러 이상의 반도체를 구매하는 데 이는 전체의 약 5%(4000억원)에 이른다. 화웨이의 구매 감소는 곧 미국을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 확대로 세계 반도체 수요가 약 40% 쪼그라들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화웨이 제재에 따른 나비효과는 5G 시장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전 세계 5G 표준을 정립하는 3GPP의 핵심 회원인 화웨이가 장비를 제공할 수 없으면 5G 인프라를 구축해야 되는 통신사들이 계획에 차질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술조사업체 그레이비서비스와 데이터조사업체 앰플리파이드가 최근 5G 관련 표준기술특허(SEP)에 관해 공동 진행한 결과 화웨이가 302건(19%)으로 가장 많은 SEP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SEP란 특정 사업에 채택된 표준기술을 구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 특허다. 미국이 글로벌 5G 공급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고 해도 화웨이에 특허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 제재에 대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최근 몇 달 간, 록히드 마틴, 아마존, 애플, 3M, 포드자동차 등의 기업을 대표하는 무역 단체는 미국의 광범위한 규정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트럼프 정부에 제기했다.
미국 법률가들은 만약 미 정부의 제재 규정이 집행된다면, 기업의 공급 및 서비스 제공업체 또는 국제 생산 및 유통 시설들 중 그 어떤 곳도 규정을 엄격히 준수한 업체가 생산한 라우터, 스위치, 인터넷 서비스, 클라우드 네트워크 등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로얄메일서비스를 이용해 제품을 운송하는 미국 기업의 런던 지사는 영국 우체국의 통신 설비를 담당하는 기업이 시스템 내부에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대형 로펌 중 한 곳인 코빙턴앤벌링의 사만다 클라크 변호사는 “화웨이 시스템은 중국과 유럽, 아프리카 일대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일부 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 정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미 정부의 조달망에 얼마나 관여돼 있는지 알 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용하는 여러 부품 중 일부 구성이 화웨이 장비이더라도 이를 쉽게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