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재은 기자
2017.05.28 12:03:29
박근혜 정부, 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 스스로 사퇴
신상 문제 정치권 힘겨루기 등으로 인준안 지연
노무현 정부 이후 3번 대통령 취임이후 총리 인준 통과
이낙연 인준안 야권 발목잡기..통과가능성 높아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자인 이낙연 인준이 야권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과거 정부에서도 초대 총리들의 인준은 쉽지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6월 이후 각 정부의 초대 내각 수장인 총리 인준안이 무사히 통과된 전례는 거의 없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국회 검증절차가 느슨했고, 정권출범일 직전 인선이 발표에 이뤄졌었다.
특히 지명자 개인의 신상이 검증과정에서 문제가 됐거나 정치권의 힘겨루기 속에 임명동의안 처리가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인준안 통과가 지연됐다. 노무현 정부 이후 3번의 정권 모두 대통령 취임 이후 총리 인준안이 통과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준안은 탄핵으로 인한 궐위선거 이후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 ‘위장전입’ ‘병역면탈’ 등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 지명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논란 끝에 자진 사퇴했다. 아들 병역 면제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 후보자는 1970~80년대 부장판사, 대법관등으로 재직하며 서울, 경기도, 수도권 일대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의혹이 있다. 아들 두명 모두 군 면제를 받았고, 이들이 8살 6살에 서초동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나 편법 증여 의혹에 시달렸다.
김용준 후보자는 박근혜 정권 출범을 돕는 인수위원장으로 역할했지만, 박근혜식 불통의 ‘나홀로 인사’가 빚은 참사로 여겨진다. 이는 결국 4년뒤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인한 불명예 퇴진의 시발점이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용준을 비롯해 정홍원, 안대희, 문창극, 이완구, 황교안, 김병준 총리후보자 7명가운데 3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고, 1명은 청문회도 거치지 못한 채 사퇴했다.
박 정부 정홍원 초대 총리는 박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013년 2월26일 인준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인맥), 강부자(강남 땅부자) 회전문 인사 등 내각 인선에 참패하며 정권 초부터 민심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 초대 총리인 한승수 후보자의 경우 부통산 투기와 위장전입 의혹과 함께 정부조직 개편안의 유탄이 총리 인준안에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은 2008년 1월28일 한승수 전 총리를 후보자로 지명하고 2월20~21일 인사청문회가 실시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여성부 폐지 방침에 대한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정부조직법은 2월22일 어렵사리 처리됐다. 한 지명자 임명동의안은 정부 출범 이후인 2월 29일에야 통과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22일 일찌감치 고건 전 총리를 총리후보자로 지명하고 청문회도 실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고건 전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월 26일 사실상 단독 소집한 국회에서 특검법을 처리하고, 이후 여야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고 전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되기 전인 DJ정부에서는 야권의 반대로 김종필 초대 총리가 6개월간 ‘총리서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23일 김종필 전 자민련 명예총재를 총리후보자로 지명했지만, 한나라당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 5.16 쿠데타 가담 전력, 경제에 대한 비전문성 등을 들어 당론으로 인준 반대 입장을 정했다.
임명동의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김 전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인 3월 3일 문민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당시 총리의 제청을 받아 17개 부처 장관을 임명하고, 김종필 총리서리체제로 내각을 꾸린다. 총리 인준동의안은 그해 8월 17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식 3일 전인 2월22일 황인성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고 취임식 당일인 25일 임명동의안이 처리됐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대선 당시 용공음해에 대한 사과없이는 협조할 수 없다며 동의안 처리에 불참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발목잡기는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5대 비리 고위공직자 원천 배제 공약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병역면탈,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표절, 부동산 투기’ 등 5대 비리관련자는 고위공직자에서 완전 배제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낙연 초대 총리 후보자부터 병역면탈, 위장전입 등 2가지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김용준 총리후보자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약하다고 볼수 있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가 내건 인사원칙을 초대 총리부터 어긴다는 부담이 크다.
야권의 비판이 커지자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민들께 사과드린다. 야권에는 송구하다”며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했지만, 야권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90%에 육박하는 등 강력히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야권으로서는 집권 초기 추진력에 브레이크를 걸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민 10명중 7명은 이낙연 총리 인준안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이처럼 ‘너가 더 했으면서 남을 탓하냐’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야권에게는 부담이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궐위선거로 치러진 만큼 혼란을 수습하고 국정을 안정시켜야할 의무가 있는 탓이다.
결국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엔 적지 않은 흠결이 남게 될 전망이다. 총리 인준안은 청문회 종료 사흘 이내에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시한은 제출일로부터 20일 이내인 5월 31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