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람·숲·노을…이 모두가 음악이죠"

by김용운 기자
2012.07.31 10:32:14

이데일리가 만난 문화인 ⑥ 정명화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정명화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사진=김용운 기자)


[평창(강원도)=이데일리 김용운 기자]서울은 며칠째 섭씨3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8월11일까지)의 주무대인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는 달랐다. 28일 낮 기온은 28도에 머물렀다. 이날 평창에서 만난 정명화(68)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 예술감독은 “이곳만 오면 절로 시원하다”며 한여름 무더위를 비켜간 곳에서 열리는 대관령국제음악제에 대한 장점부터 설명했다.

정 예술감독은 지난해 동생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3년 임기의 예술감독에 부임한 후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국제적 명성과 내실을 동시에 향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정 예술감독은 그만큼 한국 클래식 연주자의 기량과 청중들의 수준이 높아진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클래식음악제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청중들과 즐기는 축제라는 측면도 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규모는 물론 미국의 아스펜이나 유럽의 여타 음악제들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다. 그러나 참여하는 연주자의 네임벨류와 기량은 이미 세계정상급에 올라왔다. 특히 국내 연주자의 기량은 어디를 가도 뒤지지 않는다. 청중들의 태도도 최고다. 또한 클래식음악제는 축제에 참여해 기량을 쌓으려는 음악도들에게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대관령국제음악제는 국내 학생들의 경우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이곳에서 배우고 익힐 프로그램이 많다. 아티스트들이나 학생들이 상호간에 자극을 받고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후원자가 생겼다. 대관령국제음악제가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과 연관이 있다 보니 겨울에도 클래식 축제를 마련하게 됐다. 내년 1월 중순에 열 계획이다. 대신 여름보다 규모를 작게 하고 재즈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다. 공연 역시 오케스트라보다는 모스틀리 피아노 트리오 위주로 할 것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까지 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가 나가기도 했는데 오해다. 나는 1회부터 연주자로 참여하다가 지난해 동생 경화와 같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내 목표는 무엇을 새롭게 하는 것보다 대관령국제음악제가 가진 장점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장점을 올림픽 때까지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예술감독 임기 연장 식으로 비친 듯하다. 연임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외국 연주자들과 지방으로 공연을 갔는데, 길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외국 친구들이 클래식 연주자를 공연장 바깥에서 알아본다는 사실에 무척 신기해했다. 대관령에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 오게 됐다는 이들이 많았다.

70년대, 나와 동생들이 외국 콩쿠르에 가서 상을 타면서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한국에 오면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클래식이 전반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듯하다. 대신 우리 젊은 팝아티스트들이 정말 잘한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말도 못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클래식 전공하는 제자들에게 ‘그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습하는 줄 아느냐’며 오히려 보고 배우라고 할 정도다.타고난 재주 없이 클래식을 전공하기는 무척 어렵다. 대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배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 전공을 하려면 타고나야 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고 스스로 노력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 때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줄었다. 후원하는 재단도 많아졌다. 나도 미국에서 악기를 빌려 연주했다. 다만 레슨비용이 문제지만 재주 있는 친구들은 우리끼리 그냥 봐주기도 한다.

일대일 레슨도 중요하다. 하지만 특히 한창 자라고 공부할 때는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섞여야 한다. 각자 다양하게 타고 났기 때문이다. 거기서 자기가 자기 것을 골라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음악은 만들어서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숲에 그늘이 지고 등등 자연의 모든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 감수성이 중요하다. 유년시절 부모님은 대천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석양이 질 무렵 연주회를 하도록 해주셨다. 요즘 친구들에게는 그런 정서적 감성적 여유가 없는 듯해 가장 안타깝다.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장점은 아름다운 자연 가운데서 청중과 연주자들이 서로 섞여 음악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문화교류를 위해 지난 20년간 몇 번이나 북한에 가려다 못 갔다. 동생(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남북문화 교류에 관심이 크다. 서로 모이면 답답해 한다. 어떻게(분단된 지) 몇십년이 지났는데 이러고 있을 수 있나. 머릿속에서는 항상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힘들다. 다만 남북관계라는 게 정치적이기 때문에 변화가 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

1944년생.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 1971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첼로부문 1위를 차지하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정명훈과 호흡을 맞춘 정 트리오로도 유명하다. 199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9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