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비추는 건, 밤바다만이 아니었네(VOD)

by조선일보 기자
2007.07.12 09:40:18

등대여행 - 홍도&가덕도



 [조선일보 제공] 여름과 바다는 참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물 반 사람 반'인 해수욕장에서 바가지 요금에 시달리며 김 빠진 콜라 한 잔 먹고 있으면 '나만의 한적한 바다'가 그리워지지요. 바다의 가장 시원한 모습을 맘껏 구경 할 수 있는 등대 두 곳에 다녀왔습니다.

대부분 등대는 바다 쪽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땅 쪽에서 보면 '오지'에 가까운 외진 언덕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셈이지요. '등대마을'은 관광객 발길 잘 닿지 않는 조용한 어촌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배가 띄엄띄엄 뜨는 경우가 많아 가는 길도 고단합니다. 그래서 이들 마을은 손때를 덜 탔고 무엇보다 조용합니다.

아침이면 일출을, 저녁이면 낙조를 볼 수 있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등대<사진>, 그리고 맑은 날이면 전망대에서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부산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등대를 소개합니다.




홍도 등대(정식 명칭은 '홍도항로표지관리소') 숙소에서 묵은 날 새벽, '뿌우우우'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불이라도 난 것일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일단 나갔다. 전날 등대로 올랐던 길을 안내라도 하듯 함께 오른 동네 진돗개 '홍이'가 여태 문 앞에서 자고 있다가 따라 나선다.



사무실로 올라가 "무슨 일 났나요, 사이렌이…" 하고 묻자 김원근 소장이 '하하' 웃는다. '안개 피리'라는 뜻의 '무적(霧笛)' 소리인데, 압축기에서 만들어낸 공기를 강한 압력으로 뿜어내는 일종의 나팔이란다. "요즘 큰 배들은 위성항법 장치가 있어서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잘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고깃배들은 아직도 등대의 불빛과 나팔 소리가 꼭 필요합니다." 바다는 물빛이 희게 여겨질 만큼 안개가 꽉 찼다. 새들도 길을 잃는다는 못된 바다 안개, 그 속에 혹시라도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작은 배를 향해 울음을 뱉는 등대가 참 기특하다.

'물빛 따라 뱃길을 잡는다고 하는 흑산도와 홍도 사이의 바닷물은 푸르다 못해 검다.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때 저만치 홍도의 암열(岩列)이 나타난다. 홍도의 등대는 홍도 주변의 배를 인도하는 커다란 임무를 띄고 있다.' 등대원 이상익씨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준 1970년대 문화재위원회 안내책자에는 홍도 등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푸르다 못해 검은' 물색은 30년 사이 많이 바랬지만 해가 떠오를 무렵 등대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여전히 깊은 청록을 뽐내고 있다. '독립문', '두섬', '군함바위' 등 아기자기 예쁘면서도 뾰족한 홍도 특유의 여성스런 암초들이 보는 이 별로 없는데도 당당한 자세다.
홍도 2구 선착장에 내리면 '홍도항로표지관리소(등대)'라고 쓰인 표지판이 바로 나타난다. 왼쪽 오른쪽으로 모두 화살표가 나있다. 흔히 알고 있는 '관광지' 홍도는 쾌속선이 들어오는 1구고, '등대마을'이라고도 불리는 2구는 정규적으로 다니는 배가 없어 1구와는 정반대인 조용한 분위기다.

정보라도 얻어볼까 하는 마음에 마을로 난 오른쪽 길로 갔다.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은 낮잠 자는 듯 조용하다. 홍도의 적갈색 규석을 겹겹이 쌓은 돌담이 오르막길을 따라 층층 케이크처럼 마을을 채우고 있다. 작은 마리아상이 두 손 모으고 있는 작은 성당과 그 위로 보이는 교회가 이정표처럼 선명할 뿐 식당도 없고 노래방도 없고 관광객도 없다.





▲ 물 건너고 산 넘어, 홍도등대로 /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 Tagstory에 올라온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