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겨눈 반도체 규제에 '삼성·SK' 타격…”新 첨단 생산기지 찾아야”

by김응열 기자
2023.02.26 15:27:37

美, 28일부터 반도체 투자 기업 보조금 신청 접수…’가드레일’도 나올 듯
“中 반도체 공장 기술 제한 둘 것” 예고도…삼성·SK, D램·낸드 생산 타격
전문가들 “패권 따라 미국 투자 불가피…중국 못 놓으면 기술 경쟁 낙오”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이 중국 공장의 반도체 생산에 기술 상한선을 정하겠다고 예고한 데 이어 자국 내 투자 기업을 상대로 보조금 신청을 받으면서 중국 투자를 막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밝힐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나 미국, 인도 등 중국 외 지역에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책이라고 분석한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오는 28일부터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제도다. 생산 보조금 390억달러(약 50조7000억원),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달러(약 16조7000억원) 등 5년간 총 527억달러(약 67조4000억원)를 지급한다. 이번 신청은 생산 보조금이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 중인 삼성전자는 보조금 신청 대상에 해당한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과 R&D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다만 보조금 지급에는 조건이 달렸다. 수혜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서 첨단 반도체 시설을 투자해선 안된다.

레거시(구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존 시설은 규제하지 않는다. 관건은 레거시 반도체의 정의다. 반도체지원법은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레거시 반도체의 경우 개념을 명확히 규정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낸드플래시와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정의가 모호하다. 업계에선 보조금 신청 접수를 시작하면서 메모리의 레거시 반도체 개념도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분야 레거시 반도체 개념은 지난해 10월 상무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장비 수출을 통제한 기준과 유사한 정도로 규정될 전망이다. 당시 상무부는 미국 기업이 △18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EIP) 경제안보팀장은 “가드레일 조항의 레거시 반도체 규정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발표한 수출통제에 준하는 수준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했지만 이후에는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반도체 생산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기술 상한은 상무부가 검토 중이다. 보조금 지급 조건과 상무부 방침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추가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 중국에서 레거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중국 내수용으로 제조해야 한다.

레거시 반도체가 안정적 매출을 내기도 어렵다. 자율주행차와 챗GPT 등 반도체 연관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반도체 기술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전작보다 개선된 차세대 제품이 연달아 개발되고 수요 역시 첨단 공정을 도입한 신제품으로 이동하는 만큼 레거시 반도체 시장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는 빠른 속도로 적층화와 미세화가 진행 중”이라며 “(중국 공정이 뒤처지면) 당장 1~2년 뒤라도 여파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와 학계는 우리 기업이 중국 외에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을 갖추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간 중국에 들인 투자 금액이 막대하더라도 미래 현금창출 기지를 새로 만드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전체 낸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낸드 20%, D램 40%를 중국에서 만드는 만큼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시장 점유율 하락과 매출 감소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유출 우려가 적은 우리나라나 선진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미국,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도 등이 첨단공장 생산기지에 적합하다고 본다. 인도는 10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반도체 투자에 쓸 예정인데다 미국과 국방과 및 IT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핵심 첨단기술 구상(iCET)’도 체결했다. 미국의 규제리스크가 적어 전력·용수와 숙련된 인력 등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중국은 레거시 공정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나 미국 등에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도 “중국을 놓지 못하다 기술 발전에서 낙오하면 더 큰 손실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