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총각 제비 되어 돌미륵에 깃들다

by조선일보 기자
2009.01.08 11:50:00

전설의 고향:경북 안동 이천동 연미사(燕尾寺) 돌미륵

[조선일보 제공] 연미사 앞 좁은 길엔 조그만 초가 주막이 있었다. 서울로 과거 보러 가는 사람들이 쉬거나 자고 가는 주막이었다. '연이'는 그 주막에서 일하는 맘씨 고운 처자. 당시엔 손님이 쌀을 가져와야 그 쌀로 밥을 지어줬는데 돈이 없어 쌀을 조금만 가져오는 손님에겐 자기 쌀을 보태 배불리 먹여주었다.

많은 총각들이 착하고 예쁜 연이를 사모했다. 그중 서후면 이송천 마을에 사는 부잣집 아들은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쳐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저승 문서를 살펴본 염라대왕은 "올 때가 안 되었으니 집으로 가라"며 그를 돌려보냈는데 문지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문을 열어주는 건 나다. 나에게 인정(뇌물)을 쓰지 않으면 안 보내준다." "가진 게 있어야 쓰지 않는가." "저승에 너의 창고가 있는데 네가 남을 많이 도와주었으면 가득 차 있을 것이니 그 창고에서 재물을 가져오면 된다."

평소 남을 돕지 않던 부잣집 아들의 '저승 창고'엔 볏짚 두 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망연자실하는 총각에게 문지기가 하는 말, "이웃 동네 연이라는 처자 창고가 차고 넘친다. 일단 쓰고 나중에 이승 가서 갚든지 해라."

살아 돌아온 총각은 연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저승에서 꾼 재물을 갚겠다고 했다. 연이는 "빌려준 적이 없다"며 "정 갚고 싶으면 큰 바위 미륵님이 비 맞지 않도록 절을 지어 달라"고 했다. 연이와 총각은 재목을 구해 돌미륵 주변에 큰 바위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다음 기와까지 덮었다. 그런데 지붕 올리러 올라가면서 내려갈 궁리를 하지 않은 것 아닌가. 둘은 생각다 못해 지붕에서 함께 뛰어내렸는데 신기하게도 땅에 떨어져 다치지 않고 제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도움말='다시 떠나는 이야기 여행' 저자 한국교원대 최운식 명예교수



착한 연이와 연이의 덕행 덕에 죽다 살아난 총각의 전설이 서려 있는 연미사 돌미륵. 그 앞에 도착한 시간은 1월 4일 밤 9시쯤이었다. 안동과 영주를 잇는 5번 국도 주변은 조용하고 캄캄했다. 둥그렇게 흐르는 별과 낮부터 떠있던 밥그릇 같은 상현달이 선명했다. '여기 어디쯤인데…'하고 주위를 둘러보다 달이 하늘에서 국도변으로 내려온 듯, 희게 빛나는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 그대로의 돌에 문양만 새겨 넣은 거대한 삼각 몸통은 '이리로 오라'며 양팔을 넉넉히 벌린 모양새다. 머리는 따로 깎아 큰 돌 위에 얹었다. 몸통과 머리의 경계선이 선명하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흰 조명 속에서 빛나는 불상은 목에서 몸통 쪽으로 검붉은 물이 흘러내린 모양새다. '안동 이촌동 석불상(보물 제115호)'이 공식 명칭인 이 화강암 석불을 이 고장 사람들은 흔히 '제비원 미륵'이라고 부른다. 전체 높이가 23.39m, 머리 높이(2.43m)만 웬만한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석상은 고려시대인 11세기쯤 만들어졌단다.

전설을 전해줬다는 남조철씨는 "제비원 미륵은 분명 여성"이라고 확신했다. 빨갛게 칠해진 도톰한 입술과 오똑한 코, 머리에 쓴 족두리 모양 조형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비를 베풀어 하늘에 많은 재산을 쌓았다는 연이의 복(福)을 나누어 가지려는 마음인지, 안동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새벽에 미륵을 보고 나가야 그날 돈을 많이 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 아침마다 조용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중앙고속도로 예천IC→928번 지방도 보문사·영주 방면→928번 지방도 안동·옹천 방향→옹천삼거리에서 5번 국도 대구·안동 방향→제비원로 표지 보고 좌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