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손'이 전하는 시대 앞서간 노트북의 秘史

by류준영 기자
2012.10.23 10:00:00

(인터뷰)안현철 리뷰안테크 대표
기종별 200여대 소장…세계 최초 노트북 박물관 건립 꿈
애니콜 SPH-P9000, 싱크패드 701C 등 IT 기업들의 흔적

[이데일리 류준영 기자] 삼성전자의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이 한때 노트북 브랜드로 잠깐 쓰인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선보인 ‘애니콜 SPH-P9000’()은 접이식 노트북으로 모바일인터넷은 물론 음성통화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접거나 펼칠 때 고장을 일으키는 결함으로 얼마안가 단종된 ‘비운’의 노트북이다.

노트북아지트(www.nbazit.com)에는 시대를 앞서갔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제품들로 즐비했다. 노트북아지트는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 위치한 노트북 개조 및 SSD 개발·장착업체 리뷰안테크가 운영하는 노트북 체험공간이다.

‘전당포’ 주인은 안현철(36) 대표이사. 녹슨 노트북도 그의 손을 거치면 모두 하이브리드 노트북이 된다고 해서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SSD 개발 및 장착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모은 노트북이 지금은 기종별로 200여대나 된다. 안 대표의 ‘골동품’ 노트북 이야기는 ‘혁명’이라 불리는 급속한 IT 기술 발전과 다양성이 녹아있다. 아울러 그 속에서 끊임없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현(現) IT 기업들의 흔적이다.

▲안현철 대표가 노트북아지트에서 독특한 모양의 노트북을 들어보이고 있다.
화면 10.4인치, 키보드 12인치. 키보드에 걸려 커버가 닫힐 것 같지 않은 ‘IBM 싱크패드 701C()’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영구컬렉션에 전시돼 있는 모델이다. 안 대표는 “씽크패드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며 “701C는 액정 패널을 열면 키보드가 중앙에서 2개로 분할돼 펼쳐지는 구조로, 마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버터플라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올해의 노트북’이라며 치켜세웠다. 편의성을 상품 경쟁력의 으뜸으로 꼽는 최근 디자인 정신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노트북과 캠코더의 억지스러운 컨버전스(융합)가 우스꽝스러운 소니 ‘바이오GT1’()는 ‘찍자마자 인터넷에 바로 올린다’는 콘셉트의 시작을 알린 제품이다. 같은 콘셉트의 제품들이 노트북이 아닌 카메라 시장에서 최근 인기다. 디지털카메라에 무선랜 기능을 탑재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실시간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한 와이파이 카메라 제품들이 그것이다. 12년 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바이오 GT1의 디자인 콘셉트 계보를 지금은 카메라가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1997년 도시바는 초슬림 노트북을 선보이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리브레또60’()은 당시 VHS 비디오테이프 수준의 크기(210x115x34mm)와 무게(850g)로 ‘경이적’이란 찬사를 받았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슬림형 노트북 두께가 1cm 미만이란 점을 고려할 때 당시 노트북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안 대표는 “리브레또60이 안겨준 충격파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아이패드를 무대에 들고 나왔을 때와 맞먹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우주정거장에서 쓰는 노트북은 어떤 모양일까. IBM의 ‘A31P’() 모델은 험한 공사현장이나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지금의 ‘터프노트북’을 연상케 한다. 안 대표는 “몇 년 전에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우주선에 장착된 노트북 부품으로 모토로라에선 단종된 지 오래된 8비트 CPU 프로세서(Z80)을 얻기 위해 냉장고 폐기물을 주워 모은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며 “우주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은 그만큼 성능과 속도 보다는 견고성과 안전성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요즘 옛 대우전자에서 나온 몇 안 되는 ‘솔로 4200T’를 찾기 위해 옥션과 중고나라, 이베이, 중고노트북 온라인카페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안 대표는 세계 최초 노트북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다.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고속 보조기억장치이다. 기존 하드디스크와 달리 전자식 방식으로 메모리를 저장해 충격에 강하고 얇게 만들 수 있다. 구형 노트북을 SSD로 업그레이드 하면 5배 이상 속도 개선 효과를 나타낸다.

<사진 1>IBM(현 레노버) 싱크패드 701C
<사진 2>소니 ‘바이오 GT1’
▲<사진 3>도시바 ‘리브레또60’
▲<사진 4>삼성 ‘SPH-P9000’
▲<사진 5>IBM의 ‘A31P’
▲삼성전자가 지난 1994년 9월에 선보였던 1호 노트북(SPC 5800)이다. 안현철씨는 “해외생산력에 의존치 않고 자체 개발력으로 완성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삼성 ‘센스’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제품”이라고 평했다. 안현철 대표의 애장품 1호다. 당시 구매가 399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