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결정적장면]칼은 사라졌지만, 위 속 토마토가 남았다

by남궁민관 기자
2020.04.25 12:55:42

제2의 고유정이라 불린 '관악구 모자살인' 사건
직접증거 없지만, 다수 간접증거가 범인 남편 지목
法, 사망 추정 시간 등 인정…무기징역 선고
재판장 "검사도 울컥하는데"…비정상적 남편에 분노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범행 도구는 물론 혈흔, 지문, 족적, 현장 인근 CCTV 등 유의미한 직접 증거는 모두 사라진 채 남은 건 처참히 살해된 아내와 아들의 싸늘한 시신 뿐이었다. 현장감식 경찰관조차 “20년의 현장감식 경력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현장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완전 범죄는 없었다. 수많은 간접 증거들이 한 명을 지목하고 있었고, 그는 바로 피해자들의 남편이자 아빠, 조모(42)씨였다.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관악구 모자살인 사건’ 편 화면 캡처.(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 캡처)


지난 24일 열린 ‘관악구 모자(母子) 살인사건’ 1심 선고공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손동환)는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손 부장판사는 논리와 경험칙상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간접증거들이 그가 가족을 살해했다고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억울하게 떠난 피해자들…위 속 토마토를 남겼다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이 유·무죄 여부를 가르는 핵심 증거가 됐다. 부검 결과 피해자들의 위에는 토마토와 견과류 등 죽 상태의 음식물들이 발견됐다. 검안의와 부검의 등 총 6명의 법의학자들은 피해자들이 마지막 식사 후 짧게는 4시간, 길어도 6시간 이내 사망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통상 위 속 음식물을 통해 추정한 사망 시간은 변수가 많아 그 신뢰성이 낮게 평가된다. 다만 1명이 아닌 2명 모두 유사한 소화정도를 보인 점, 6세인 아들의 경우 성인 대비 변수에 노출될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점 등을 고려해 재판부는 신빙성 있는 증거로 봤다.

당시 별거 중이었던 조씨가 사건 당일 피해자들의 집을 찾은 시간은 저녁 9시부터 익일 새벽 1시35분까지로 자신이 집에서 나서기 전 피해자들이 살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자신이 집을 찾은 저녁 9시 이미 설거지가 된 상태라고 진술했으므로, 피해자들은 저녁 9시 이전 저녁 식사를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두 가지 가정을 세웠다.

저녁 7시 30분 이전 피해자들이 저녁 식사를 했다면 이들의 사망 추정 시간은 익일 새벽 1시 30분 이전이 된다. 즉 조씨와 함께 있던 시간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녁 7시 30분부터 저녁 9시 사이 저녁 식사를 했다면 사망 추정 시간은 익일 새벽 3시 이전이 된다. 조씨의 말대로 자신이 그 집을 떠난 새벽 1시 30분까지 피해자들이 살아있었다면, 새벽 1시 30분부터 3시까지 제3자에 의해 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집 근처 3대의 CCTV 분석 결과와 족적이나 지문, DNA 등 현장 감식 결과 제3자의 외부 침입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위 속 토마토는 조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본심 감추지 못한 조씨…가족을 사랑하지 않았다

조씨 유죄 선고는 지난 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은연 중 드러났다.

당시 조씨는 전기가마 제조업체 관계자의 증인신문에서 유독 흥분하며 본인이 직접 질문하겠다고 나섰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손 부장판사는 조씨에게 “그동안 여러 중요한 증인이 나왔을 땐 왜 가만히 있었나. 흥분되나”라고 꾸짖었다. 이어진 피의자 신문에서도 “검사조차 아이 모습이 나오면 울컥하는데, 재판 내내 피고인은 이 두 피해자의 죽음에 대해 지나지게 냉정하게 보인다”며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같은 조씨의 이상 행동들은 수많은 간접증거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검찰은 내연녀가 있었던 조씨가 부인, 아들과의 관계에서 완벽히 애정이 결여된 상태라고 봤다. 사건 발생 전 1년 간 조씨가 부인에게 전화를 건 것은 106차례에 불과했지만, 내연녀에겐 무려 2640차례나 했다. 내연녀 증언에 따르면 조씨가 아들에 대해서도 ‘친자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마 도박에 빠져 금전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처지에서 아내가 가입한 여러 개의 보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사건 발생 당시 조씨 은행 계좌 잔고는 바닥 나 있었고, 사건 발생 직후 보험사이트에 접속해 아내가 든 보험에 자신이 피보험자인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조씨에게 전화했던 경찰관은 “그동안 변사사건을 처리하면서 유족에게 전화를 건 경험이 여러 번 있는데, 조씨와 같이 자신의 신분을 묻지도 않고 가족이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등을 물어보지 않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마치 피해자들의 사망을 이미 알고 있었고, 경찰이 자신을 찾을 줄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조씨는 피해자들의 장례식장에 단 20~30분 머물다 돌아갔고, 이후 영화를 다운로드 받거나 신변잡기적 내용을 인터넷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손 부장판사는 “조씨는 오랜만에 피해자들이 사는 남루한 빌라에 들렀고 어린 아들은 아빠를, 아내는 남편을 반갑게 맞았는데, 조씨는 이들을 살해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채 나타났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며 “생명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절대적 가치인 것은 정언명제이고,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 남편이 아내를, 아빠가 어린 아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정언명령”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