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양효석 기자
2009.02.13 10:45:00
2000년 핫이슈 SKT-신세기 합병, 승인권자들은 어땠나
공정위·정통부, 독점·시장폐해 우려에 `강한 합병 조건`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2000년 5월16일 과천정부청사 공정거래위원회 회의실.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이남기 부위원장, 김용·조휘갑·서승일 위원 등 8명이 전원회의를 위해 자리했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간 기업결합을 심의하기 위함이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양사 합병으로 망 투자·운영비가 절감되고, 판매조직도 공동활용으로 시너지가 날 것이란 긍정론이 나왔다. 하지만 대다수 위원들은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동통신시장 가입자 기준 총 5개사중 1위 업체가 3위 업체를 인수하는 것으로, 경쟁구조가 악화된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이용자의 효용은 가입자수 규모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큼, 이용자는 가입자수가 많은 업체를 선호하게 되어 신규 가입자가 SK텔레콤으로 몰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2001년 6월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6.9%에서 50%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또 자회사인 휴대전화 제조사 SK텔레텍으로부터 공급받는 물량을 연간 120만대로 제한했다. SK텔레콤 자회사로서 타 이동통신업체에 휴대전화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휴대전화 생산량까지 규제한 것이다. 결국 SK텔레텍은 2005년 팬택에 팔렸다.
◇공정위, `독점` 우려에 강한 메스
신세기통신 대주주였던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코오롱상사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지분매각을 추진했다. 99년말 기준 신세기통신은 4789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였다.
매수자는 신세기통신과 같은 800MHz 대역을 사용중인 SK텔레콤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정부에서도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통신업계 인수합병을 독려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도 향후 데이터서비스를 위해 주파수가 더 필요했던 상황이라 이해관계가 맞았다.
우선, 코오롱상사가 그해 12월20일 포항제철에게 주식 23.53%를 매각했다. 포항제철은 보유지분 27.66%와 코오롱상사로 부터 매입한 지분을 포함 총 51.19%를 그 다음날 SK텔레콤에 매각했다. 매각대가는 현금 1조874억원과 SK텔레콤 신주 6.5% 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대가가 더 컸다. 정부로부터 다양한 인가조건이 붙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42.7%에서 56.9%로 올라가 2위인 KT(030200) 자회사 한국통신프리텔(현 KTF)과 격차가 38.6%p가 발생,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봤다. 이동통신시장에서 신규가입자 유치는 휴대전화 보조금에 의해 크게 좌우되므로, 재무상태가 양호한 SK텔레콤이 유리하다는 것.
당시 SK텔레콤(017670)은 시장점유율 50%선을 맞추기 위해, 대리점에서 SK텔레콤 가입을 중단하고 협의를 맺어 LG텔레콤(032640) 가입신청을 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또 SK텔레콤이 휴대전화 시장에서 수요를 독점하면서 자회사인 SK텔레텍 제품 수요를 증가시킬 우려가 크다고 봤다. 이동통신시장에서의 독점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시장에서의 독점까지 고려한 것.
역시 그럴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에서 출발한 규제다. 99년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총 구매물량은 610만1000대 였으며, 이중 SK텔레텍으로 부터 공급받은 물량은 32만6000대(5.3%)에 불과했다. 합병후 2000년 1∼2월중 공급비중이 12.0%로 올라갔지만, 절대비중은 낮다.
공정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수요독점 형성은 이동통신시장에서도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었다"면서 "SK텔레콤이 휴대전화에 첨단기능을 우선적으로 부착해 공급하도록 해 신형 휴대전화를 선호하는 고객이 SK텔레콤 또는 신세기통신 가입자로 몰리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공정위 독점국장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기업결합심사제도는 독점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세계 각국이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일단 독점화가 진행된 시장은 독점사업자가 가격정책, 유통망 등 각종 진입장벽을 형성해 경쟁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쉽사리 경쟁이 회복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통부의 13개 합병 인가조건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섰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통신기업 합병을 위해선 정통부의 인가도 받아야 했다.
정통부는 주로 이용자 이익관점에서 13개 조건을 붙였다.
첫번째 역시 경쟁제한에 대한 조건이다. 합병 이후 시장점유율 확대 등으로 심각한 경쟁제한적 상황이 발생하면, 정통부가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추가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 경쟁제한적 상황 판단은 경쟁사 시장점유율과 사업규모 등을 통해 정통부가 판단하기로 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 요금·서비스에 대한 이용약관 인가를 다시 받도록 했다. 기존 신세기통신 가입자가 선택한 요금제는 그대로 유지토록 했고, 가입자 의사와 무관하게 번호를 변경해서도 안된다고 지시했다.
또 다른 통신사업자에게 비차별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망 접속을 허용하며, 무선인터넷망도 개방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신세기통신이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한 수와 납부한 과징금도 승계토록 했다. 이 같은 조건들이 이행됐는지 여부는 이후 3년간 반기별로 정통부로부터 점검 받았다.
LG텔레콤 관계자는 "당시 공정위와 정통부의 인가조건으로 인해 LG텔레콤 시장점유율은 13.4%에서 15.8%로, KTF는 28.6%에서 34.5%로 각각 올라갔고 SK텔레콤은 합병후 58%까지 상승했다가 49.7%로 떨어졌다"면서 "후발사업자를 위한 규제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