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펀드결산)①양적 팽창시대 저물다
by이진철 기자
2008.12.18 10:30:00
글로벌증시 급락..주식형펀드 고속 성장세 `주춤`
정액적립식 펀드보다 자유적립식 펀드 선호 `뚜렷`
운용사 부익부 빈익빈 여전..미래에셋 자금유입 지속
[이데일리 이진철기자]
올해 국내증시는 지난 2005년 6월이후 처음으로 1000선 아래로 밀릴 정도로 큰폭의 조정을 보였다. 연말 들어 1100선을 회복하는 등 회복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펀드시장은 주식시장의 침체의 영향으로 적지않은 수난을 겪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국내 펀드설정액은 주식, 채권, 혼합형 등을 모두 합해 지난 12일 기준으로 352조1480억원을 기록하며 양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들어 펀드 설정액은 52조원 가량 증가하며 양적 팽창시대를 이어갔다.
그러나 올해 펀드 자금유출입 내막을 살펴보면 주식형펀드의 수익률 부진으로 펀드인기가 사그라들며 수탁고도 정체상태를 보였다.
전체 주식형펀드 수탁고는 지난 12일 기준 139조5522억원으로 작년말 116조3515억원에 비해 20% 가량 증가했다. 작년의 경우 한해동안 주식형펀드 수탁고 규모가 2배 이상 커진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 것이다.
올해 설정액 증가액 중에서 국내주식형은 19조원, 해외주식형은 5조원을 각각 차지했다. 주식형펀드 수탁고는 한때 140조원대 중반까지 증가했지만 하반기 들어 주식시장이 깊은 조정을 보이면서 현재는 140조원을 하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주식시장의 깊은 조정을 반영하듯 주식형펀드의 설정액과 운용수익을 합한 순자산액(NAV)이 올한해 55조원이 허공으로 날라갔다.
전체 주식형펀드 순자산액은 지난 12일 현재 81조9864억원으로 작년말 137조1867억원에서 크게 감소했다. 특히 국내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액은 20조원 가량이 감소한데 비해 해외 주식형펀드는 33조원이 줄어 해외펀드 투자자의 손실규모가 적지 않음을 반영했다.
증시불안이 지속되면서 주식형펀드로 자금유입이 주춤한 반면 단기 대기성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자금이 쏠린 것도 올해 펀드 자금동향에서 특징이다.
지난 12일 현재 MMF 설정액은 87조5068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내며 올해초 47조1356억원에 비해 40조원이 넘게 증가했다.
MMF 설정액이 급증한 것은 정책금리는 낮추는 방향임에도 불구, 시중유동성이나 실세금리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작용하면서 초단기로 자금을 운용하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MMF 설정액은 개인의 줄어든 모습을 보이는 반면 법인은 늘어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웰스케어센터 팀장은 "주식형펀드는 올 상반기까지 국내와 해외 모두 동반 유입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하반기 들어 국내의 유입세과 달리 해외는 자금이탈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국내 주식형펀드의 경우 적립식 위주로 자금증가세를 보였다"면서 "해외펀드는 수익률 부진과 맞물려 내년 비과세 혜택이 없어지고 작년에 과도하게 자금쏠림이 복원되는 과정이 나타났다고 볼수 있다"고 말했다.
적립식펀드의 경우 증시조정에도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며 올한해 주식시장 수급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10월말 적립식펀드 판매잔액은 75조5656억원으로 전월대비 405억원이 증가하며 불안한 주식시장에 아랑곳없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적립식펀드 총계좌수는 9월말 대비 38만6003개 줄어들며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국내외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적립식 투자방법의 변화를 불러왔다. 자금이 자동이체돼 빠져나가는 정액적립식 펀드보다 불입일자와 금액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자유적립식 펀드 선호경향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10월말 기준으로 정액정립식 판매잔액은 9월말 대비 4770억원 감소한 반면 자유적립식은 5180억원 증가했다.
조한조 우리투자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작년 7월의 주식형펀드내 적립식펀드의 비중은 39.8%에 불과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올 10월에는 47.2%까지 증가했다"면서 "적립식펀드의 유출폭보다 거치식펀드의 유출폭이 더욱 컸다"고 말했다.
조 애널리스트는 "주식형 적립식펀드의 대형화가 지속되고 있고, 주식형펀드내 적립식펀드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최근 적립식 계좌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밝혔다.
증시침체에 따른 주식형펀드 수익률 부진은 상위권 운용사의 순위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미래에셋으로의 자금유입은 지속돼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빈익빈 부익빈 현상이 여전했다.
펀드 전체 수탁고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59조277억원으로 전년대비 9조3387억원이 증가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그 다음으론 삼성투신운용(55조9654억원), 한국투신운용(20조8378억원)이 뒤를 이었다. 하나UBS자산운용은 전체 수탁고가 전년대비 3조1013억원 감소한 16조4763억원을 기록해 KB자산운용(19조1009억원)에 4위 자리를 내줬다.
미래에셋의 자금유입이 지속된 것은 운용규모, 판매채널, 시장인지도 측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펀드 순자산총액은 삼성투신운용이 지난 1년반 동안 1위 자리를 고수해오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제치고 선두를 탈환했다.
순자산총액은 삼성투신운용이 53조4499억원으로 전년대비 29조9777억원이 증가했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순자산총액은 34조9256억원으로 전년대비 21조1686억원이 줄었다.
이는 주식시장이 급락함에 따라 주식형펀드 비중이 높은 미래에셋운용이 타격을 받은 반면 삼성투신은 상대적으로 주식형펀드 비중이 작아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운용사 수탁고 상위권 다툼은 내년초 SH자산운용과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의 합병이 예정돼 있어 또한번 자리바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탁고는 SH자산운용이 11조7566억원,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이 15조2611억원으로 두 회사가 합치면 단숨에 3위에 오르게 된다.
펀드수익률 부진에 따른 투자자 이탈을 막기위한 정부와 운용사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올한해 펀드시장의 특징이다. 펀드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세제지원책을 발표했고, 자산운용사와 판매사도 수수료 인하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증시안정을 목적으로 장기보유 적립식 국내 주식형펀드 및 채권형펀드에 대해 일정비율의 소득공제 및 배당소득 비과세 혜택을 발표했다. 다만 세제지원책 발표 이후 시장에 즉각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은행부실 등 글로벌증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가입분 적립식금액에 소득공제가 제외되고, 배당소득의 비과세 혜택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따라서 펀드투자에 있어 별다른 투자유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률 반토막펀드가 속출하고, 투자심리는 얼어 붙는 상황에서 자산운용사와 판매사들이 투자자들의 유인하기 위한 조치로 수수료 인하에 동참하는 것도 관심을 끌고 있다.
SH자산운용과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은 가입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수료가 낮아지는 스텝다운 방식의 주식형펀드를 출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스텝다운 방식을 적용해 펀드가입 3년, 5년, 7년에 10% 내외의 인하율 적용을 검토중이다.
판매사중에는 미래에셋증권이 계열운용사 펀드의 판매보수 인하를 실시중이고, 삼성증권도 독점 판매중인 펀드에 대한 판매보수 인하를 결정했다. 은행권에서도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이 동참하는 등 펀드판매 보수 인하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펀드투자자들을 올들어 30~50%에 달하는 원금손실로 고통을 받는데 비해 운용사와 판매사는 수수료 수익을 챙겨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앞으로 장기투자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펀드 수수료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