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여행] 김치가 맛있으면 겨울이 살맛 난다

by조선일보 기자
2006.11.16 12:10:00

[조선일보 제공]

▲ 경남 거창 나투어농장에서 수확한 가을 배추와 무
이하연(47)씨는 요즘 김장재료를 구하러 전국을 누비느라 바쁘다. 예년에 비하면 늦은 편이다.

“윤달이 낀데다 날이 더워서 좀 늦게 담그게 됐네요. 올해는 11월말부터 12월 중순까지가 김장 담그기 좋을 것 같아요.”

한정식집 ‘봉우리’를 운영하던 이하연씨가 김치사업을 시작한지 3년째.

강원도에 폭우가 쏟아져 배추와 무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중국 김치가 대량 수입된다는 뉴스를 듣고서였다.

제대로 된 김치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봉우리 찬·김치’다.

맛있는 김치의 기본은 역시 좋은 재료였다. 가장 중요한 배추는 물을 많이 주지 않은 곳에서 햇볕을 듬뿍 받으며 자라야 좋다.

“요즘 배추를 빨리 크게 키우려고 물을 엄청 뿌려대요. 그렇게 키운 배추는 덩치는 크지만 속이 성글어요.

좋은 배추는 좀 질기면서 고소한 단맛이 나죠. 소금에 절여도 무게 차이가 크지 않아요.”
거창 배추·무
이하연씨는 경남 거창에서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배추를 찾았다. 유기농기업 ‘게비스랜드’에서 운영하는 1만2000평 규모의 ‘나투어농장’이 있다. 해발 430m 고랭청정지. 배추와 무, 쌀 등 80여가지 농산물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 미생물 바이오비료를 이용해 키운다.

요즘 나투어 농장에는 배추걷이가 한창이다. 배추가 엄청나게 크다. 바깥으로 겉잎이 벌어져 꽃처럼 예뻤다. 배추는 2.5~3㎏ 정도의 중간 크기가 가장 맛있다. 이하연씨는 “네 쪽을 낼 수 있을만큼 큰 배추는 수분이 많아 잘 무르고 덜 고소하다”고 했다. 식칼로 배추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속이 하얗고 노르스름했다. 배추 속이 차는 것을 ‘결구됐다’고 한다. “너무 결구된 배추는 향이나 맛이 덜해요. 80% 정도만 결구된 배추를 고르세요.”

배추밭 옆에는 무가 자라고 있다. 무는 1㎏ 정도 나가는 중간 크기의 조선무가 김장용으로 알맞다. 묵직하고 단단해야 수분이 적당하고 심이 없다. 무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달큼하고 맵싸하다. ‘무 먹고 트림만 안 하면 인삼보다 낫다’는 말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트림이 났다. 무에는 소화를 돕는 효소인 아스타제가 많다. “김장철 무는 특별히 산지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겨울부터 5월까지는 달고 아삭아삭한 제주산 무가 좋아요. 6월과 7월에는 맛도 없고 비싸니까 아예 김치에 무를 넣지 않아요. 8월초부터 가을까지는 고랭지 무를 쓰죠.”


나투어농장에는 견학 오는 사람들이 많다. 벼 베기에 이어 배추 뽑고 무 뽑는 농촌체험, 유기농채소 시식 등이 마련된다. 김장 재료를 사가기도 하지만, 택배 주문이 더 많다.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여줘 편하다. 절임배추 10㎏과 무 5개로 구성된 ‘김장세트’를 4만원에 판다.

● 가는길: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지곡·안의IC에서 마리삼거리(무주·수승대 방향) 쪽으로 달리다 수승대를 지나면 바로 나투어농장이다.

● 볼거리: 퇴계 이황이 “속세의 근심을 잊을만큼 경치가 빼어나다”고 칭찬한 수승대(愁勝臺), 금원산휴양림, 월성계곡, 송계사계곡, 구연서원 등이 가깝다.

● 맛집: 나투어농장 주변은 먹을만한 식당이 마땅찮다. 좀 멀지만 20㎞ 가량 떨어진 거창읍에 가면 ‘감악산’(055-942-6870)이란 고기집이 있다. 한우고기가 괜찮다. 육회 1인분(200g) 1만5000원, 등심·갈빗살 1만6000원, 삼겹살·목살 6000원.

● 문의: 게비스랜드 (02)794-7001(내선 2번) www.natur.co.kr, 봉우리 찬·김치 (02)567-8022 www.bongkimchi.com





▲ 강경 젓갈 시장
가을이면 햇볕에 말리려 내놓은 고추로 경북 영양 전체가 벌겋게 물든다. 일교차가 심한 산간 고랭지에서 생산한 ‘영양고추’는 껍질이 두꺼워 빻으면 가루가 많이 나고, 국물에 넣어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영양에서는 영양 고추만으로 만든 고춧가루를 ‘빛깔찬’이란 브랜드로 판매한다. 태양초도 있고 화건초도 있다. 태양초는 햇볕에 말린 고추. 노란색 꼭지에 몸통은 맑고 투명한 붉은색이다. 흔들면 씨앗 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화건초는 쪄서 말린다. 녹색 꼭지에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탁한 붉은색이다. 한눈에 태양초와 확연히 구분된다.

화건초라고 태양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하연씨는 김치를 담글 때 화건초와 태양초를 섞어 쓴다. “태양초는 매운맛이, 화건초는 단맛이 나요. 영양학적으로는 높은 온도에 쪄서 말린 화건초가 태양초보다 우수합니다. 한 가지 고추를 쓰기보다 여러 종류를 섞어 쓸 때가 김치 맛은 더 좋아요.”

영양읍 입암면 선바위관광지 안에는 ‘영양고추홍보전시관’(054-682-6271)이 있다. 고추의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꾸몄다. ‘영양고추유통공사’(054-682-9797)에서는 영양고추를 구매할 수도 있다.

● 가는길: 서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안동IC에서 34번 국도를 탄다. 안동 시내에서 청송군 진보면에서 31번 국도로 바꿔 타 달리면 영양읍이 나온다.

● 맛집: 영양은 고추만큼이나 질 좋은 쇠고기로도 유명하다. 영양한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는 ‘맘포식당’(054-683-2339), ‘실비식당’(054-683-2463) 등이 있다. 1인분 200g 2만1000원 정도 한다.

● 문의: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054)680-6067, www.yyg.go.kr



젓갈 하면 역시 강경. 이하연씨는 “새우오젓과 새우육젓, 갈치속젓, 밴댕이젓, 곤쟁이젓 등을 강경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충남 강경은 일제 강점기 하루 배 100여 척이 들락거릴만큼 성했던 포구다. 금강 하구에 둑이 생기면서 포구로서 기능은 사라졌지만 해산물 염장기술은 그대로 남은 전국 제일의 젓갈시장이다.

별의별 젓갈이 다 있지만 역시 새우젓이 많다. 새우젓은 껍질이 얇고 살이 통통하면서 밝은 분홍색이라야 좋다. 중국산은 끝맛이 쓰고 오래 보관하면 하얀 가루가 가라앉는다. 국산은 몸통이 희고 머리나 꼬리 끝으로 갈수록 분홍색을 띄는 반면, 중국산은 전체가 연분홍색을 띈다.

5월에 담근 새우젓을 ‘오젓’이라 한다. 이하연씨는 “오젓을 거의 모든 김치에 조금씩 넣어 맛을 잡아준다”고 했다. “온도 변화가 없는 토굴에서 뽀얗고 노랗게 삭아 고소한 맛을 내는 것을 골라야 김치 맛이 좋아요. 갈거나 다져 쓰죠.” 6월에 담근 육젓은 통통하고 색이 밝다. 백김치, 비늘김치, 석류김치 등 무가 들어가는 김치에 넣어 시원한 맛을 살린다. “백김치에는 물에 넣고 끓여 그 물을 걸러 써요. 새우젓 건더기를 손으로 짠 국물은 백김치 소를 버무릴 때 넣으면 좋아요.”

● 가는길: 천안-논산고속도로를 달리다 연무IC에서 빠져나와 강경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기차로는 호남선 논산역에서 내린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논산행 고속버스가 있다.
● 젓갈 사려면: ‘강경 맛깔젓’ 로고가 붙은 가게를 찾으면 안전하다.

● 팁: 보온도시락에 밥을 싸간다. 젓갈을 맛보다보면 혀가 아리다.

● 맛집: 젓갈 전문식당은 없다. 손바닥만한 밀복을 된장과 고추장 국물에 시원하게 끓인 복탕(1만원)을 내는 ‘태평식당’(041-745-0098)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