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인플레 우려 큰데…美 증시는 왜 연일 신고점 찍나

by김정남 기자
2021.08.16 11:36:33

다우·S&P, 이례적인 신고점 행진
①전례 찾기 어려운 시중 유동성
②생산성 향상 따른 기업 호실적
③인플레이션 둔화 따른 정점론
"버블 터진다" 비관론 적지 않아

(출처=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뉴욕 증시가 약세를 잊었다. 델타 변이 확산, 인플레이션 우려 같은 악재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주요 지수는 연일 신고점을 갈아치우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15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형주 위주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지난 10일 이후 4436.75→4447.70→4460.83→4468.00으로 4거래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 역시 같은 기간 신고점을 새로 썼다.

주목할 건 이 기간 각종 악재들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내 델타 변이 확산으로 하루 평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선 와중에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각각 5.4%, 7.8%에 달했다. 연방준비제도(Fed) 목표치(2.0%)를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뉴욕 증시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유동성이다.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 G씨는 “역사상 가장 낮은 마이너스(-) 실질금리 하에서는 주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준에 따르면 실질금리를 나타내는 10년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1.07%(11일 기준)다. 기업 혹은 개인이 돈을 빌리는데 드는 실질적인 이자 부담이 마이너스라는 의미다. 델타 확산 등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연준의 긴축을 늦추고, 이는 금리를 당분간 낮게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 바탕에 있다.

월가에서 올해 말 S&P 지수 전망치를 가장 높게 제시한 기관은 골드만삭스(4700)와 오펜하이머(4700)인데, 주요한 이유는 낮은 금리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금리가 전망보다 낮아지고 있다”고 진단했고, 존 스톨츠푸스 오펜하이머 수석투자전략가는 “연준 예상대로 인플레이션이 감내할 수준이고 금리가 적절하다면 투자자 유입이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호실적도 강세장에 한몫하고 있다. 거물 투자자인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최근 배런스와 인터뷰에서 “S&P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22배는 ‘뉴 노멀’”이라며 “강세장을 이끄는 건 기업들의 이익이 불을 뿜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행 P/E는 현재가 아닌 미래 실적을 기준으로 현재 주가 밸류에이션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16~17배를 통상적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때문에 요즘 미국 주식은 너무 비싸졌다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야데니 대표는 “(주가 고평가 논란을 불식할 만큼) 기업들의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 역시 있다. 시안 챈 HSBC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면 국채금리는 이를 반영해 상승한다”며 “다만 흥미롭게도 국채금리는 4월 정점을 찍은 후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낙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비관론도 못지 않게 많다. 역사상 가장 낮은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게 첫 손에 꼽힌다. 연준이 경기 둔화 조짐이 다시 불거지고 있음에도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의 첫 신호를 보낸 게 그 방증이다. 펀드매니저 G씨는 “연준이 긴축에 나서면 (강세 일변도인) 증시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연말 S&P 지수 3800으로 약세장을 점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사비타 수브라마니안 주식전략 헤드는 “올해 2분기 기업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언급이 지난해보다 900% 폭증했다”며 “많은 기업들이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을 거론하고 있다”고 했다.

‘버핏 지표(buffet indicator)’ 역시 증시 과열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거래 주식의 총가치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다. 20여년 전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특정 시점의 주가 수준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지표이자 유일하게 신뢰하는 단 하나의 지표”라고 말한 이후 버핏 지표로 불린다.

현재 버핏 지표는 237%이다. 단연 사상 최고다. 통상 100% 이상이면 거품이 낀 것으로 보는데, 이를 훌쩍 상회했다.

자산운용사 GMO의 설립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최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버블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데, 언제 터질지 아는 것은 무척 어렵다”며 “바이러스, 인플레이션 등을 비롯해 예상치 못한 모든 것들이 버블을 터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