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값 잡으려면 원료유통 개선부터"

by이승현 기자
2011.12.05 12:10:00

[월요초대석] 박인구 한국식품공업협회장
유통기한 대신 상미기한 비용유발 요인 줄여야
레시피 통일·원료 현지화..한식세계화의 첫걸음
협회서 식품 기부받아 취약층 돕는 방안 추진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 유럽과 미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정부가 물가와 관련해 근원적인 처방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기업에 가격을 강제하는 일은 없었다. 가격은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하는 가격정책은 기업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식품 가격을 잡으려면 식품제조업체뿐 아니라 농수축산물의 유통단계를 관리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한 채 식품제조업체에만 원가부담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전 단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야 식품 가격 인상을 막을 수 있다. 또 식품업체들의 비용유발 요인을 줄여줘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통기한제도다. 유통기한이 곧 폐기기한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식품이 폐기처분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상미기한(賞味期限, 제품을 맛있게 먹을수 있는 기한 또는 품질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기간)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를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 또 하나는 그린벨트 규제로 인해 물류센터를 서울 인근 지역에 짓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물류비 증가가 만만치 않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심각한 것 아닌가. 이런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요즘에 `을사조약`이라는 말이 있더라. `을이 다 죽는 조약`이란 뜻인데 실제로 을에 대한 횡포가 심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불균형이 심화돼 있다. 따라서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는 찬성이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인프라가 없었으니까 모든 사업영역을 대기업이 다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기업도 핵심역량을 키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중소기업적합업종도 전문기업에 대해서는 예외로 해 주고 비전문기업, 문어발식 확장기업에 대해서는 사업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식품의 세계화는 솔직히 쉽지 않다. 식품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식량자급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스시와 간장을 특성화 시켜 세계화에 성공했다. 우리는 일본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 우리만의 특성화된 식재료를 발굴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름(브랜드), 레시피만 통일하고, 원료는 현지화해야 한다.

또 한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은 해외 식량자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머지않아 전 세계적으로 식량 자원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밀, 커피, 사탕수수 등 기본적인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원료 시장을 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가에서 곡물수입회사를 만든다고 하는데 좋은 방법이다. 또 해외농업개발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식품안전 문제는 위해물질과 이물질로 구분할 수 있다. 위해물질은 철저하게 사전예방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잘 되고 있다. 문제는 이물관리인데 이 부분에 대한 정부 관리가 너무 심하다. 이물을 정부가 관리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식품산업은 공업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불량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을 정부가 나설 것이 아니라 업체와 소비자가 해결하는 것이 맞다. 이물문제가 너무 부각되다 보니 클레임처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물가 내리려면 이런 비용이 줄어들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그렇지 않다. 또 식품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과 영세 음식점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겨서 식품업계 전체의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 정부가 식품산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해 줬으면 좋겠다. 유럽 퀼른에서 열린 아누가 식품박람회, 미국 FMI식품전, 일본의 푸덱스 재팬 등을 다 다녀봤는데 해당 국가에서는 식품산업에 관심이 높았다. 우리나라의 식품산업은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 GDP의 4~5%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농림수산식품부가 탄생했을 때만 해도 식품산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식품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 꼭 하고 싶은 일은 아침밥 먹기 운동이다. 쌀 소비 차원을 넘어 국민건강을 위해서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침을 먹지 않은 분위기가 많다. 식품업체들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아침밥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비만방지 프로그램, 저나트륨 식단 등 식품산업과 관계가 있는 공익 활동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식품기업들이 제 살길이 바쁘다 보니 이런 활동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또 한가지는 협회차원에서 식품을 기부 받아 취약계층을 돕는 사회적 기업 만들려고 한다. 식품기업에서 기부를 받아서 취약계층을 멤버십으로 정해서 정가의 10~20%에 파는 것이다.

◆ 1969년 식품산업의 발전과 식품위생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식품제조업체들의 대표적인 이익단체다. 그동안 ▲식품 안전 및 진흥 정책에 대한 과제 발굴과 제도 개선 건의 ▲식품산업체 수출마케팅과 글로벌 경영 지원 ▲식품 원자재 수급 지원 ▲식품위생 관련 교육 프로그램 운영 ▲식품안전 지도 컨설팅 및 점검 지원 ▲홍보·출판 및 캠페인 사업 등을 해 왔다. 내년 1월1일부터는 명칭을 한국식품산업협회로 변경한다.

조선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7년 21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에 20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주미 상무관과 주EC 상무관, 상공부 부이사관 등을 거쳤다. 이후 1997년 동원정밀 대표이사로 기업경영을 시작해 동원F&B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동원그룹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2009년 10월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식품업계를 이끌고 있다. 

대담=김희석 부장, 정리=이승현 기자, 사진=한대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