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캠핑]진짜 자연 100배 즐기기

by조선일보 기자
2006.05.11 09:54:04

흙 위에서 자고, 나무 그늘에 뒹굴고…

[조선일보 제공]

(캠퍼 이상한씨)
텐트, 아무리 싸도 4인용 15만원은 기본이고 비싼 건 100만원까지 한다. 여기에 침낭·테이블·취사도구 등 이동식 살림을 차리려면 4인 가족 비용이 최소 100만원. 텐트와 연결시켜 거실공간을 만드는 보조텐트(리빙쉘)와 그늘막, 버너 달린 테이블과 나무 식기까지 '스노우 피크'(일본 브랜드)이나 '콜맨'(미국 브랜드)같은 고가 장비를 사느라 1000만원 이상 투자하는 마니아도 있다.

하지만 초기에 한번만 '세게' 투자하면 그 다음부턴 돈 들일 일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 냉장고에 있는 음식재료 그대로 들고 오면, 기름값과 야영장 입장료 외엔 돈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캠퍼 정재호씨)
정말 그렇다. 텐트 설치부터 요리와 설거지까지 모두 '함께' 하다 보면 안 친해질 수가 없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자다 보면 피붙이의 친밀감을 몸으로 느낀다.

아이들 전인교육도 절로 된다. 자연 속에 던져진 아이들은 TV나 게임을 잊고 흙놀이·물놀이·공놀이 등 스스로 놀거리 찾아 이웃 친구들과 어울린다.

(캠퍼 이예원씨)
이들의 결론은 주말에 '집'에서 뒹구느니 '자연'에 파묻혀 뒹구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이동식 별장들이 함께 모여 형성된 하나의 마을은 마치 원시공동체 같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고, 기름을 나누고, 아이들의 웃음을 나눈다. 누군가 아프면 의사가 나타나고, 기계가 고장 나면 엔지니어가 나타난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이 없으니 서로를 보면서 좋은 점만 배워가게 된다.

캠핑마니아 가족들 얘기를 더 들어볼까?





둘째 딸 혜원이(8)의 별명을 따 '곰돌이네'로 문패를 단 정재호(38·방송기기설계사)-문남숙(34)씨 가족. 한 달에 2번은 꼭 떠난다. 일주일 후 있을 애들 중간고사도 아랑곳 않고 4일 지리산을 찾았다. 다섯 식구 살림을 싣기에 SUV '소렌토'도 버거워 아예 트레일러를 달았다. 짐도 싣고 아이들 놀이공간도 될 수 있도록 정씨가 500여 만원 들여 직접 설계 제작한 보물이다.

처음엔 가기 싫어했던 부인 문씨도 남편한테 물들었다. "겨울엔 추워서 절대 안 간다고도 해봤지만, 발전기 사서 전기장판까지 깔아주는 남편을 거절할 수가 있어야죠."

그리고 아이들. 첫째 딸 은지(10)는 캠핑을 시작하면서 성격이 180도 변했다. "4년 전만 해도 내성적이고 찡찡거리던 아이가 캠핑 다니더니 늘 웃고 다녀요. 얼마 전 전학을 갔는데 선생님이 전혀 전학생 같지 않게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은지와 혜원이, 막내 호림이까지 낯선 기자에게 서슴없이 말을 건다. "저는 곰돌이구요. 얜 토끼에요. 이 화분 제가 만들었는데 예쁘죠? 히히."

모두 낯선 아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캠핑 덕분이다. "결혼 11년 째지만 남편과 싸운 적이 없어요. 좋은 공기 마시다 보니 마음이 순해져서 그런가?"


이예원(39·고속도로공사)씨는 텐트부터 조리대까지 모든 캠핑장비를 트레일러 하나에 모았다. 짐 수납공간 위엔 접이식 텐트, 트레일러 바퀴 위엔 조리대를 설치했다. 떠나고 싶을 땐 차 뒤에 트레일러만 걸면 된다. 설계만 6개월, 제작은 1년 6개월 걸린 오지여행 10년차 캠핑 고수의 솜씨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위해서죠. 딸래미는 '캠핑'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두 살 때부터 아빠와 오지여행을 함께 다닌 외동딸 예진이(6)는 별명이 '캠핑소녀'다. 산과 들을 누빈 소녀답게 마음이 밝다.

트레일러 위 텐트에 있는 예진이를 안아 내려주려고 했더니 "나 뚱뚱한데요, 크크" 한다. "아내는 불편하다고 잘 안 오려고 해요. 특히 여름에 샤워하기 힘들다고요." 이씨는 아내를 캠핑장으로 꾀기 위해 각종 요리 이벤트를 선보인다. 이날은 먼저 도착해 아내와 딸을 위해 초콜릿 쿠키를 굽고 닭다리 허브구이를 재워놨다. "가족들 기뻐하는 모습 보는 게 즐거워요~!"




이번이 캠핑 세 번째인 이상한(39·자영업)씨 가족은 지난 가을, 첫 캠핑 때 돗자리에 '브루스타' 놓고 라면과 햄으로 끼니를 때웠다. 전형적인 초보 캠퍼의 모습. 그 때 이웃들은 바비큐며 피자며 특별 요리를 "먹어보라"며 가져다 주었다. 지난 3월 두번째 캠핑 땐 이씨도 화로를 사다가 바비큐를 해먹었다. "우아, 이래서 사람들이 캠핑을 하는구나." 그 때부터 아이들은 외식을 안 한다. "음식점 요리는 맛이 없어요. 여기서 구워먹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첫째 고형이(12)의 말. 집에서도 애들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놀이터에서 고기 구워다 집으로 나른 적도 있다.

비가 와도 집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흙, 바람, 비 모두 자연 공부잖아요." 이씨는 캠핑 3번 만에 예찬론자가 됐다. "콘도는 또 다른 도시라서 싫어요. 남들이 쓰던 젓가락, 이불 다시 써야 하고…." 부인 정지희(39)씨가 거들었다. "거의 마누라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빠졌다니까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