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병수 기자
2000.09.28 12:12:28
IMF 총회가 열린 프라하의 거리가 연일 혼란스럽다고 한다. 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프라하를 찾은 국내 은행장들의 행보도 이에 못지 않은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블루 프린트’를 통해 우량은행간 합병 등 대형화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결과야 어찌됐건 행장들의 마음은 편할리 없어 보인다. 한편에서는 주의의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에서 ‘합병’ 방향을 타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정부가 가장 최근, 비교적 분명히 제시한 국내 선도은행의 기준은 ‘세계 50대 은행’이다. 기준이 정해진 만큼 프라하를 찾은 우량은행장들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여하튼 프라하 일정을 마친 은행장들은 오늘(28일)부터 속속 국내로 돌아온다. 프라하 대회전에서 얻은 "보따리"를 어떻게 펼칠지 주목된다.
◇‘합병’태풍의 중심은 = 역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다. 세계 50대 은행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어떤 형태든 이들 은행과의 조합이 현재로서는 필수적이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프라하에서 “은행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합병은 시대적 대세”라며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인위적으로 묶는 것보다는 우량은행간의 자발적 합병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도 우량은행간 합병에 대해선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민은행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상훈 행장은 국내에서도 서슴없이 “이런저런 화법으로 여러 은행에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주택은행의 게임 상대는 ‘정부’ = 주택은행의 합병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쉽지 않다. 뉴욕증시 상장을 표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의 ‘카드’을 쉽게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주택은행의 게임 상대는 오히려 ‘정부’일 것이란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로서는 한국 금융기관중 처음인 ‘뉴욕증시 상장’이 가져올 효과에 적잖이 고민하는 눈치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합병을 통한 2차 금융구조조정도 포기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고민이다.
따라서 주택은행은 ‘뉴욕증시 상장’과 ‘합병’이라는 ‘꽃놀이패’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와중에 김정태 행장은 국내에서 은행 합병이 성공하려면 “어느 한 곳이 다른 한 곳을 완전히 흡수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면서 대상은행들을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김 행장은 한 외국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흡수합병된 은행에서는 최소한 10년간 임원을 뽑지 않아야 된다”는 얘기도 했다.
◇배척받는 국민은행, 그래도 믿는 구석은 = 국민은행도 합병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시장 특히 대상은행들의 거부감은 예상외로 크다. 국민은행에서는 부인하지만 장기신용은행과의 합병에서 드러낸 씻지 못할 과거가 흠이다. 국민은행은 내부(노조)의 부담도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최대 소매은행이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모종의 ‘조치’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이는 일단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때 어떤 조합이건 간에 국민은행이 ‘용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은행은 公자금을 받는 은행과의 합병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대상은 역시 외환은행과 조흥은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환은행은 어찌됐건 형식적으로는 공자금을 받아 공적자금 투입은행과는 다르고, 조흥은행은 공적자금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정부로부터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