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감산 이행 불확실, 유가 연내 코로나 이전 회복 어렵다"
by원다연 기자
2020.06.07 12:00:00
'저유가 지속가능성 및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점검'
"코로나19發 경기침체 고려하면 저유가 부정적 영향이 커"
"수요회복 지연·감산 이행 불확실…연내 유가 회복 어려워"
"산유국 위기 따른 국제 영향 제한적…물가 하방압력 요인"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6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통해 하루 970만 배럴 감산을 7월 말까지 한달 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 4월중 연초 대비 80% 수준까지 급락한 국제유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감소 대비 공급과잉 문제가 이같은 감산 합의로 일부 해소되며 5월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연내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다시 올라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7일 한국은행은 ‘해외경제포커스-저유가 지속가능성 및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점검’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통상 유가 하락은 우리나라와 같은 원유 수입국에는 실질소득 증가 및 생산비용 감소 등을 통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정도를 고려할 때 이번 저유가 상황은 세계경제 및 국제금융 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전세계 봉쇄조치와 산유국 간 감산갈등으로 올 1~4월중 국제유가는 전례없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4월중 연초 대비 79%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4월 평균 국제유가는 배럴당 23.3달러로 2002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유례없는 세계경기 침체로 석유수요가 감소한 데다 공급 및 금융 요인이 더해지면서다. 세계적인 봉쇄조치로 세계 석유수요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운송용 석유수요가 대폭 감소했고, OPEC은 지난 5월 초 산유국간 감산 시행 전까지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원유생산을 확대했다.
원유선물시장의 비상업적 거래도 유가 하락 압력을 더했다. 실제 실물인수 여력을 갖추지 못한 원유선물 투자자들이 5월물 만기를 앞두고 매수포지션을 급격히 청산하는 과정에서 지난 4월 20일 WTI선물 유가는 배럴달 -37.6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국제 유가는 5월 이후 수요부족과 공급과잉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 완화되면서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연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은 “경제활동 재개 이후에도 경제주체의 심리 위축, 방역조치 지속 등으로 도로운송 및 항공여객 수요가 예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코로나19의 2차 확산과 고용 악화 등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석유수요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OPEC+의 감산 이행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OPEC+ 소속 23개 산유국 석유장관은 6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통해 하루 970만 배럴 감산을 7월 말까지 한 달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OPEC+는 지난 4월 12일 화상회의에서 5~6월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하고 각 산유국에 감산량을 할당했으며 이를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5월중 OPEC 13개 회원국 중 감산하기로 한 10개국은 할당량 중 74%만 이행했다. 특히 이라크의 감산량의 합의 수준의 38%, 나이지리아는 19%에 그쳤다.
한은은 “지난 5월 1일부터 OPEC+의 감산 재개로 공급과잉이 다소 완화된 측면이 있으나 감산 이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불확실성에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영국 옥스포드경제연구소(OEF) 등 주요기관들은 올해와 내년중 국제유가가 배럴당 30~40달러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은은 저유가 기조가 일부 산유국의 경제위기 및 해외투자자금 회수와 미국 셰일산업의 부실화로 이어지며 글로벌 경제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다만 저유가 기조의 장기화는 글로벌 저인플레이션 추세에 물가하방압력을 더해 기대인플레이션(경제 주체들이 품고 있는 물가에 대한 전망)을 낮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은 “저유가 지속은 취약 산유국의 경제상황을 큰 폭으로 악화시키면서 세계경제에 일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들 국가의 위상을 고려할 때 직·간접 충격의 크기는 제한적”이라며 “재정부족자금 충당 등을 위해 산유국이 해외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경우에도 그 규모는 국제금융시장 전체 규모에 비해 미미한 수준으로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유가가 셰일산업 부실을 통해 미국의 경기회복을 저해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같은 영향이 전반적인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봤다. 한은은 “에너지부문 대출비중이 높은 일부 중소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 있으나 금융시스템에서 중요한 대형 은행은 상대적으로 대출 비중이 높지 않다”며 “미 정부와 연준이 중소기업 대출제도를 확대 시행하는 등 부채 의존도가 높은 셰일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동성을 제공하는 지원제도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저유가 기조가 기대인플레이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요국의 소비자물가가 더욱 하락하고 석유류 등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도 대부분 마이너스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경기회복 및 고용상황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저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기대인플레이션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