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현석 기자
2004.05.11 09:54:13
[edaily] 미국의 고용통계발표를 보면서 항상 두개의 서로 다른 입장에서 통계를 보는 저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수치가 주는 압력의 크기이고 다른 하나는 매달 그런 통계수치를 반는 반복성에 대한 시각입니다.
전세계 시장과 우리나라의 경제와 저의 포지션에 미치는 거대한 파장에 거꾸러지고 뒤집어지며 일희일비하는 그런 수치의 공격성과 무게에 따라 그날의 기분뿐 아니라 때로는 삶의 모습조차 이상하게 변해가는 일종의 주관적인 시각의 존재와 함께 달이 이지러지고 다시 채워올라오듯, 달달이 이어져오는 여성의 생리가 숭고한 생명연속의 한 장이듯 일종의 행사처럼 치루어내는 제 3자적인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이번달이 지나면 다시 다음달로 채워지지 않은 무엇인가를 넘기는 정신질환환자처럼 말입니다.
미 고용통계가 주는 파장은 아마 상당한 정도로 넓게 퍼져 나갈 것 같습니다.
4월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이 +28만8000명, 3월 통계 역시 당초 발표된 것보다 2만9000명이 증가한 33만7000명, 2월도 당초 4만6000명에서 8만3000명으로 대폭 수정발표 되었습니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4월 수치는 17만3000명이었지요. 실업율 통계역시 예상수준인 5.7%에서 줄어든 5.6%로 오랜만에 감소한 수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웬만한 핵폭탄급 발표인 셈입니다. 작년 8월 이후 미국에서 신규 증가한 일자리수가 110만개나 되는 셈입니다.
더구나 스노우 재무장관은 이제 미국 경제는 장기간의 경기확장국면에 들어서고 있으며 향후 더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항구적인 세금감면이란 (수요측면에서의) 확장정책이 수반되어야만 경기회복의 모멘텀이 유지될 것이란 주장도 함께 하였지요. 부럽게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의 증가와 일자리의 창출이란 환상적인(?) 경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이미 어제의 주간 신규실업청구건수(예상보다 준 31만5000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생산성지표와 완만한 단위노동비용(0.5%) 증가 역시 그렇고 공장주문도 확장일로(2.3% 예상에서 4.3% 증가)로 발표된 것부터가 장밋빛 고용통계의 발표를 예고했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시장의 반응은 상당히 교과서적입니다. 달러가 뛰고(엔109.90에서 111.60으로, 유로1.2075에서 1.1945로, 파운드1.8020에서 1.7880으로), 금리가 오르고(10년물 정부채 4.6%에서 4.74%), 주식은 순간 빠졌다가(DJI 10200수준) 미국경제에 대한 장기호재란 면이 부각되어 10270까지 오르고는 다시 약보합을 보이고 있습니다(10215). 덩달아 유럽 주요금리 또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였고, 이미 어제 금리 인상을 단행한 영국(4%에서 4.25%)의 금리 인상과 더불어 새로운 시장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국제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우려 요인들-일부 중국을 비롯한 경기과열, 주요선진국들의 금리인상, 유가앙등 및 중동을 시발점으로 한 테러-이 어떤 변주곡을 만들며 시장을 비틀어 나갈지 궁금합니다.
야금야금 오르는 유가의 궁극적 안착점과 그 듀레이션은?
스멀스멀 올라가는 주요 금리의 수준과 장단기 스프레드의 차이는?
최근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고 올라가고 있는 스왑시장의 스왑(신용)스프레드는?
오랜 달러 약세분위기를 깨고 이끌어가는 미달러의 예상치는?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진정 별 볼일없는 수준인지?
결국 새로운 시장이 새로운 세상이 우리곁에 살포시 다가와 앉은 느낌입니다.
얼마전 허진호 감독이 만든 ‘봄날은 간다’라는 서정깊은 영화가 있었지요. 깍아만든 듯한 이영애(나이많은 은수)와 그럴싸한 유지태(어린 상우)의 사랑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사랑이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상우의 저 높은 이상형의 사랑에 비해 미세한 상황의 변화를 통해 변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는 은수의 서로 다른 길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였지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의 번민과 고통을 바라보면서 어린시절의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면 지나칠까요?
개구리뼈 표본 채집을 위하여 개구리를 냄비에 넣고 서서히 데워 삶아 갈 때 점점 뜨거워지는 물을 참으며 아주 고통스럽게, 아주 점잖게, 다소곳이 죽음을 맞이하는 개구리의 모습이 상우의 모습과 일치하는 듯하고, 국제금융시장의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가만히 웅크려 앉아 비참한 앞날을 맞이할 것같은 느낌이 드는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합니다.
이제 아사사한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과도 같던 봄날은 가고 땡볕과 열대야와 태풍이 뒤엉키는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