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두 배…가도 가도 청보리밭만 보인다
by조선일보 기자
2010.05.06 11:40:00
전북 김제 청보리 여행
지평선의 정적을 깨고 山하나가 솟구쳤다
[조선일보 제공] 전북 김제 진봉면에서 올해 처음으로 보리밭 축제(5월 8~9일)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봄이나 보리는 가을이죠. 수확을 앞두고 들판을 황색으로 물들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청록을 맘껏 뽐내는 시간이 바로 5월입니다.
본래 청보리는 고창의 학원농장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규모로 보면 진봉면 보리밭의 면적은 학원농장의 10배가 넘습니다. 그 많은 보리가 바람에 파도처럼 철썩이며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죠. 김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김제 진봉 반도는 바다와 평야와 강이 서로 어울리거나 경계를 짓는 땅이다. 북으론 만경강이, 남으론 동진강이 흐르다 반도의 서쪽 끝, 심포항에서 바다와 만난다. 물로 둘러싸인 반도의 모습을 김제 사람들은 "날카로운 부리를 서해 바다로 내민 새의 머리 형상"이라 묘사했다.
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진봉산. 해발 72m로 산보다 언덕이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야트막하다. 진봉산을 비롯, 해안선에 바짝 붙은 봉화산과 미성산을 제외한 땅 대부분이 평야다.
| ▲ 지금의 김제 진봉 반도는 상반된 풍경을 동시에 품고 있다. 평야는 바람에 철썩이는 보리로 바다를 닮았으되(사진 위), 정작 바다는 물을 잃어 마른 땅이 됐다(사진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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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김제에서 보리를 보기 위해서는 이곳을 찾아야 한다. 반도의 북쪽을 차지한 진봉면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보리를 수확해 내는 곳 중 하나다. 전체 논 면적(2130㏊) 중 1400㏊에서 보리를 키운다. 여의도(848㏊)의 1.6배에 해당하는 크기요, 고창 학원농장의 10배를 넘는 크기다. 여기에 진봉면과 함께 진봉 반도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광활면(604㏊)을 합치면, 그 면적은 여의도 2배 크기를 넘어선다.
수확을 2주쯤 앞둔 4월 말, 이곳에서 보리는 대규모 군집으로 모여 하늘을 닮았다. 보리는 청록으로, 하늘은 푸른색으로 똑같이 청명하다. 보리 이삭에서 솟은 까락은 멀리선 새털구름을 닮아 보리의 청명함을 하얗게 흐리고, 가까이선 석양을 머금은 구름을 닮아 붉게 빛난다. 간혹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까락은 파도처럼 철썩이는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일제히 누워, 보리는 하늘을 넘어 바다를 닮는다.
진봉 반도의 보리는 하늘의 아득함도 닮아, 지평선에서 서로 만난다. 작가 조정래가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뤄내고 있는 곳"이라 칭했던 지역이 바로 김제다. 특히 남포 들녘 정보화 마을 입구에서 광활면 주민센터까지 이어지는 702번 지방도 위에 서면 직선으로 뻗은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광활면'이란 이름처럼 전봇대 밖으론 말 그대로 광활한 벌판이다.
하여 진봉 반도의 길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아리랑)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길을 걷다 보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간혹 평야 곳곳에 형성된 괴촌(塊村)이 이정표가 되어 주긴 하나, 작은 규모의 촌락은 서로 엇비슷해 어느 순간 얼마나 왔는지 감을 잃게 된다. 이곳이 저곳 같고 저곳이 이곳 같다. 그래서 진봉 반도의 길은 배배 꼬여 있지 않고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었음에도 미로 같다. 진봉면 주민센터 오승영 산업계장은 "전답 조사를 위해 지적도만 보고 찾아갔다가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진봉 평야는 충적 평야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상류에서 실어 내린 토사가 오랜 세월 쌓여 이뤄낸 땅이다. 새만금 갯벌은 그 땅의 평야 바깥에서 똑같은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진봉 반도를 끼고 바다에 닿는 만경강, 동진강 하구 언저리가 바로 그곳. 여기서 갯벌은 진봉 반도는 물론, 북으론 군산, 남으론 부안을 품으며 폭 20㎞가 넘게 형성되기도 했다.
반도의 서쪽 끝에 자리잡은 심포항은 그 갯벌에 기대 생계를 일궜다. 썰물 때 갯벌을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가면 밀물에 휩쓸려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포구 앞 갯벌은 넓었다. 심포가 아니라 금포로 불릴 정도로 백합을 잡아들여, 지나가던 개가 돈다발을 물고 다녔다는 말도 전해졌다.
그러나 모두 과거의 일이다. 지난달 완공된 33㎞ 길이의 새만금 방조제로 바닷물은 들어올 길을 잃고 심포는 갯벌을 잃었다. 갯벌을 잃어 백합을 잃은 심포항은 지금 봄으로 충만한 안쪽 땅과 달리 겨울의 행색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남은 몇몇 횟집이 주변 항구에서 실어온 횟감으로 과거의 명성을 간신히 이어오고 있을 뿐 대체로 적막하다.
심포항에서 거전마을로 이어지는 자갈길에서, 평야의 충만함과 죽은 갯벌의 적막함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왼편으로는 청록의 보리가, 오른편으로는 갈색의 간척지가 지평선까지 이어진다. 왼편은 본래 땅의 기능에 충실하며 이룩한 지평선이되, 오른편은 이제 의미를 잃고 이름만 남은 것들이 모인 풍경이다. 대민가도·소민가도는 이제 섬이 아닌 둔덕이 됐고 심포는 포구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새만금횟집은 상실과 충만의 풍경을 종합하는 꼭짓점이다. 이름은 횟집이나 여기서 내놓는 음식 중 회는 없다. 매콤하고 알싸한 조개무침과 조개국수, 조개쑥칼국수가 전부. 한때 식당 앞으로 바닷물이 넘실댔으나 지금 그쪽을 차지한 건 나문재(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식물)로 뒤덮인 마른 땅이다. 식당 주인 홍병희씨는 "땅이 매립되고 나니 흙먼지가 하도 날려 여기 주민들이 항의하자 부랴부랴 나문재를 심었다"며 "갯벌을 다 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한편으로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올해 안에 간척지 위로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때문.
이 같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본래 이름이 지닌 뜻을 거둬야 할 것은 하나 더 있다. 진봉산 허리에 매달린 망해사(望海寺)다. '바다를 바라본다'는 이름처럼 망해사는 작되 앞마당에 바다를 품고 있다. 그 바다는 달의 차고 기움에 따라 만경강 쪽으로 깊이 밀리거나 당겨지는 바다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인 만큼 물소리도 크게 울렸을 터이니, 이곳 요사채의 이름은 청조헌(聽潮軒)이다. 그러나 망해사가 품은 바다는 담수호가 될 가능성이 높아, 절은 앞으로 바다가 아닌 호수를 바라보게 될 전망이다.
벽골제는 의미를 잃은 포구와 섬과 절을 닮았다. 본래 벽골제는 저수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축조된 시기는 330년이요, 다섯 개의 수문 중 가장 먼 것끼리의 거리가 3㎞를 넘는다. 김제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제방을 쌓는 데만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게 축조해 김제, 만경, 부령(현 부안), 정읍 등 5개 군현을 관개했으니, 당시로서는 최첨단 건축물이었을 터다.
그러나 물이 있던 자리는 현재 모두 논이 됐고, 김제는 그 터에 농경문화박물관·아리랑문학관·벽천미술관 등을 세워 새로운 단지를 만들었다. 단지 내에 벽골제를 구성한 부분 중 아직 남아 있는 건 제2수문 장생거뿐이다.
이런 모습에서 벽골제가 저수지였던 시절은 아득하다. 그러나 벽골제의 훼손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은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이 제방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해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고 전한다.
박물관의 전언은 거기서 그치지만 그 수로는 호남평야를 변모시켰다. 자연사 답사가 이우평씨의 '한국지형산책'에 따르면 현재 김제평야의 주축을 이루는 만경강·동진강 하류 평지 지대는 경작이 거의 불가능한 소택지와 습지로 덮여 있었다. 벽골제가 있긴 했으되 그 기능이 미미했다. 벽골제비 앞에 세워진 안내문은 "고려와 조선시대 여러 차례 수리했으나, 이후로 효용도가 적어 방치됐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옛 관개 체계를 바꾼 것이 일제 강점기 때 형성된 동진수리조합이다. 이 조합은 임실군에 운암제를 설치, 지하수관을 통해 김제 평야 전역에 물을 공급했다. 이를 통해 범람원 지대가 수리안전답으로 개간됐다. 대신 이 수로는 벽골제를 통과하며 그 위용을 잃게 했다.
이처럼 벽골제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겹치고 영욕이 교차하며 김제의 속내가 드러난다. 그저 흔적만 남은 땅에서 자꾸만 발걸음을 멈칫하게 되는 이유다.
김제는 낮다. 산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개 해발고도 100m를 넘지 못한다. 김제를 관통하는 여러 도로 위에서, 시선 역시 낮아져 평온하다.
그 낮은 시선의 흐름은 동남쪽으로 다가갈수록 가파르게 솟아오른다. 김제와 완주군 경계에서 모악산이 지키고 있기 때문. 해발 793m의 모악산(母岳山)은 이름처럼 호남평야에 젖줄을 대며 김제를 내려본다. 금평저수지·구이저수지·안덕저수지가 모두 모악산에서 흘러드는 물을 안고 있다.
| ▲ 망해사에서 바라본 서해. 여기서 바다는 만경강과 만난다. / 조선영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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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나 위성사진에서, 모악산은 김제의 지형을 배반하는 이단아처럼 보이지만 기실 평야가 갖지 못한 수직의 힘으로 이 지역 신앙의 근거지 역할을 해 왔다. 목조 삼층 미륵전으로 유명한 금산사, '돌아와서 믿는다'는 귀신사(歸信寺) 등 평야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한 절들이 여기 모였다. 뿐인가. 100년 넘은 한옥 모양의 금산교회도, 1959년 벽돌식으로 재건한 수류성당도, 증산법종교본부도 모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4월 말, 절이나 교회나 성당이나 앞마당에 햇볕이 들어차 따사롭고 이제 막 피어나는 신록의 잎은 싱그럽다. 그러하니 김제를 찾았다면 모악산에 들르는 것도 좋겠다.
용산-김제역을 잇는 KTX가 하루 6회 정도 있다. 두 시간 소요. 서울 반포 센트럴터미널에서도 김제행 버스가 있다. 세 시간 소요.
한때 바다와 땅의 경계에 서 있었으나 이젠 바다를 잃은 새만금횟집(063-543-6668)이 조개무침(小·1만원)을 내놓는다. 동죽을 미나리, 양파 등에 섞어 매콤하 면서도 상큼하다. 김제시내 '곰돌이네집(063-546-1238)'에선 저렴한 가격(백반·6000원)에 푸짐한 전라도 밥상을 맛볼 수 있다. 보리를 먹인 한우도 김제의 대표적인 먹을거리. '청보리한우촌(063-543-0076)'이 김제시 농축산물 브랜드인 지평선청보리한우를 쓴다.
인천 신송고 교사 이우평씨는 '자연사 답사가'다. 10년 넘게 전국 곳곳을 직접 답사, 그 기록을 '한국지형산책'이란 책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보는 김제는 지형과 역사가 충돌한 지역이다. 전 국토 중 산악지대가 70%가 넘는 곳에서 김제는 단일 규모로 가장 큰 평원이되 그 넉넉한 지형에 뿌리 박고 산 이들은 배부르지 않았다. 적은 강수량으로 사람들은 평원을 버리고 야트막한 구릉에 기대 살았으니, 비로소 평원에 마을이 많이 형성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