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평생 소리만 혔지"… 육자배기 ''달인'' 마을

by조선일보 기자
2008.11.06 10:55:00

1년 52주 당일치기 여행 - 진도 소포마을

[조선일보 제공]

농촌 체험 여행이 인기를 끈다 했더니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체험뿐이다. 특별한 체험 여행을 원한다면 남도 땅 끄트머리 진도로 가보자. 진돗개와 육자배기, 홍주의 고장 진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소리체험이 기다린다. 분위기는 시골 외할머니댁 같이 푸근한데, 그 할머니가 국보급 노래꾼이라면 비유가 되겠다.




시작은 자장가였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하는 식이다. 다른 게 있다면 자장가를 부르는 목소리다. 구수하면서도 애환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익숙한 자장가를 한 차원 높은 노래로 만들고 있었다.

자장가를 부르고 난 할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노래는 흥그레타령인디 장단이니 박자니 헐 것도 없지라. 그냥 들에서 일함시롱 쉼시롱 허는 노래지라."

그렇게 시작된 흥그레타령은 콩밭 매는 고단함,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두루 풀어낸다.


▲ 소포마을 주민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이 마을에서는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소포 전통 민속 토요 상설공연’을 한다. /조선영상미디어

육자배기에는 북장단이 따라왔다. 느릿느릿하면서도 강약(强弱)과 고저(高低)가 살아있는 육자배기 노랫소리에는 흥과 한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없이 태어나 못 배우고, 못 먹고, 빠듯한 살림에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논바닥에 엎드려 제대로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고단했던 삶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노랫소리에 듣는 이들은 숨소리를 죽인다.

자장가에서 육자배기까지 진하게 풀어낸 이는 한남례(76) 할머니. 나중에 보니 소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웃기기도 잘하고, 노는 것도 일품이었다. 요샛말로 치자면 만능 엔터테이너다.



소포마을에서 제대로 된 강강술래를 처음 봤다. 그동안 강강술래를 그저 여자들이 손잡고 빙빙 도는 놀이로만 여기고 있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해남 우수영(右水營)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아군의 수가 적군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에게 군인의 옷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 허리를 빙빙 돌도록 시켰다. 멀리서 보기에 군대가 행진하는 듯 보이게 한 의병술이었던 것. 강강술래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소포 강강술래는 그 원형이 예부터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기본 춤 시간이 20여 분이나 된다. 소리는 매기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마을 어머니, 할머니들 20여 명이 한복을 입고 나와 춤을 춘다. 손을 잡고 둥글게 도는 것은 기본. 원을 두 개 만들기도 하고, 기와 밟기라 하여 등을 밟고 다리를 건너듯 걸어가기도 한다. 춤 동작도 무척 다양해 여러 가지 대형을 만들기도 한다. 박진감마저 넘친다. 동작 하나 틀리지 않고 척척 호흡이 맞는 것도 놀랍다.



진도북춤으로 불리기도 하는 북놀이는 원래 걸군농악의 일부분이다. 다른 악기들이 조용하게 배경음을 연주할 때 개인기를 하듯 북이 앞에 나와 한바탕 노는 것. 무형문화재 39호 김내식 할아버지의 북춤은 72세라는 연세를 잊을 만큼 힘차다.

소포마을의 소리 체험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이 입과 목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소포리 사람들은 가슴으로 노래한다. 가수들이 춤과 파격적인 의상으로 눈길을 끈다면, 소포리 사람들은 주름 깊은 얼굴과 갈라진 손등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소포 전통 민속 토요 상설공연'을 연다. 일몰 1시간 뒤부터 시작돼 진도아리랑·흥타령·육자배기·진도북춤·상모돌리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당일체험은 어른 1만원, 학생 5000원, 1박2일 체험은 숙박 및 석식·조식을 포함해 어른 4만원, 학생 3만원.

: 150여 농가에 주민 320여명이 사는 곳. 자연 부락 단위로는 진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이다. 검정쌀이 유명해 '소포 검정쌀마을'로도 불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검정쌀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친환경 농사 체험도 해볼 수 있다.






다리의 남단 북단에 하나씩 뾰족탑이 있던 것이 2005년 12월 제2진도대교가 완공되어 이제는 쌍둥이 현수교가 되었다. 다리 남단 서쪽 아래에 거대한 충무공 동상이 서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이순신 동상과 진도대교 풍광도 멋질 뿐더러 울돌목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 바닷물이 하루에 네 번 방향을 바꾸고 거센 물살을 일으켜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뜻으로 울돌목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녹진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진도대교와 울돌목 전망도 시원하다.



추사 김정희 밑에서 그림을 배우고, 글·그림·글씨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 불렸던 소치(小痴) 허련이 말년에 귀향해 지은 집이자 화실이 운림산방이다. 소치에서 시작된 그림의 맥은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문으로 4대를 이어 오고 있다.

소포마을엔 식당이 없다. 1박2일 체험엔 식사가 제공되지만 당일 체험의 경우 진도 읍내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게 좋다. 읍내까지 차로 7분 거리. 시장 근처의 사랑방식당(061-544-4117)은 진도 별미인 간재미 요리를 잘한다. 간재미의 물컹한 느낌이 싫다면 고소하고 쫄깃한 바지락회무침(3만원)도 좋다. 진도군청 앞에 자리한 옥천식당(061-543-5664)은 전라남도 음식 명가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회정식(4인 기본 14만원)과 백반(1인분 1만~1만5000원)이 깔끔하다.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영산강하구둑-대불공단-영암방조제-우수영관광지-진도대교-진도읍-쉬미항-소포리로 가면 된다.

호남고속도로-광산 톨게이트-나주-영암-해남-18번 국도-황산-문내-진도대교-진도읍-쉬미항-소포리

영산강하구둑-대불공단-영암방조제-우수영관광지-진도대교-진도읍-쉬미항-소포리



서울 강남고속터미널(호남선)에서 진도행 고속버스 하루 4회 운행, 6시간 소요. 광주에서 진도행 고속버스 하루 13회 운행, 2시간30분 소요. 목포에서 진도행 고속버스 하루 22회, 1시간 소요. 진도읍내에서 쉬미항 방면 군내버스 이용, 소포리에서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