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입주권 샀더니 "1100만원 더 내라"..'고무줄' 취득세 시끌

by정다슬 기자
2017.07.30 10:51:32

철거 시점부터 적용하던 토지세
이주 때부터 받아..세율 4배↑
'주택기능 상실 때부터 토지세'
모호한 기준에 해석도 제각각
"이주 시작해도 사람 사는데.."
지자체 '제도 개선 먼저' 목소리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얼마 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2단지 입주권(새 집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을 구입한 A씨는 당초 예상보다 매수 비용을 1100만원 더 부담해야 했다. 매매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다. A씨가 산 입주권이 주택이 아닌 토지로 분류돼 취득세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을 살 때 내는 취득세를 주택과 토지·상가·오피스텔 등 비(非)주택으로 크게 나눠 각각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토지 등 비주택 취득세율은 4.6%로 주택(1.1~3.5%)보다 최대 4배나 높다. 그런데 재건축 단지는 철거 후 새 아파트로 지어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택이 토지로 전환되는 시점이 있다. 보통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들은 이 시점을 이주가 완료되고 철거가 시작되는 것을 기준으로 적용했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고 철거가 시작돼야 주택의 기능이 사실상 모두 상실된 것으로 본 것이다.

A씨 역시 둔촌주공아파트가 지난 20일부터 이주가 시작된 만큼 주택에 대한 취득세율을 적용받는 줄 알았다. 그러나 A씨의 거래를 도와주는 공인중개사는 “조합원이 이주비를 받은 날부터 주택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구청에서 지침이 내려왔다”며 “앞으로는 취득세가 4.6%(토지세율)로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 공간 대표는 “내가 산 재건축 아파트가 주택이 아닌 토지로 분류되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강남권 재건축의 경우 매매가격이 비싸 세율이 조금만 올라도 추가적인 세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입주권에 토지세율을 적용하는 시점이 빨라지면서 이주 중이거나 앞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혼란을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6월부터 한 달여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그리고 강동구 등 재건축·재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7개 구를 대상으로 ‘수도권 도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추진 실태’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감사원은 자치구들이 재건축 입주권에 대한 취득세율을 개별 가구가 이주한 다음날부터 토지세율로 적용해야 하는데도 이 보다 낮은 주택세율을 적용한 것이 문제가 되는지 검토에 착수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강동구는 관내 공인중개사들을 소집해 이주가 이뤄진 가구는 반드시 취득세를 토지세율로 적용하라고 당부했다. 종전처럼 주택세율로 적용할 경우 매수자가 신고·납부기간(취득한 날부터 60일) 내에 취득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봐 자칫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득세의 가산세는 하루 늦을 때마다 0.03%씩 적용된다.

매수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조합원 역시 주택이 토지로 전환되는 시점이 빨라지면서 재산세 증가라는 부담을 안게 됐다. 주택은 공시가격의 60%, 토지는 개별공시지가의 70%를 각각 과세표준액으로 적용해 재산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의 경우 재산세 세율체계가 0.1~0.4%로 4단계이지만 토지는 0.2%의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재산세 부담 상한 역시 주택은 105~130%인데 반해 토지는 150%로 훨씬 크다. 둔촌동 B공인 관계자는 “둔촌주공1·2단지는 대지지분이 넓기 때문에 토지세율이 적용되면 3·4단지의 같은 면적의 아파트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대지지분이 넓은 아파트일수록 세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 연말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일몰을 앞두고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세제 기준 적용 시점은 각 조합의 사업 일정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계획 단계에 있어 올해 안에 이주가 진행되거나 앞둔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69개 단지, 총 4만 8921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지방세는 공부상 용도가 주택으로 기재돼 있고 실제 주택으로 사용될 경우 주택으로 간주해 취득세율을 감면해주고 있다. 문제는 재건축 단지가 주거 기능을 언제 상실하느냐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이주비를 지급받기 위해 단전·단수가 이뤄지는 시점부터 해당 가구를 토지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입장은 다르다. 이주비 지급이 이뤄지고 단전·단수가 이뤄진 후에도 분쟁이 발생해 장기간 철거가 이뤄지지 않거나 실질적으로 사람이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송파구 송파 헬리오시티(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단지)의 경우 2008년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일부 가구가 이주를 끝낸 상태에서 조합원 간 갈등과 소송 등으로 사업이 중단돼 2012년이 되어서야 이주를 재개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에는 사업이 지연될수록 사업비가 늘어나면서 조합원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이 제도에서는 전출을 미루며 버티는 가구가 오히려 세금 부담을 줄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진다.

따라서 재건축 대상 물건을 주택이 아닌 토지로 봐야 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명시하는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사원과 행정안전부도 지자체의 주장 등을 감안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 전까지는 재건축·재개발 단지의 토지 전환 시점은 ‘단전·단수 등 주택의 기능을 상실할 때’로 보고 토지세율로 납세해야 한다는 게 지자체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주택세율을 적용했다가 나중에 납세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현재는 토지세율로 일괄 적용하고 있다”며 “제도가 개선돼 주택세율로 부과할 수 있다면 추가 납입된 세금은 환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