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가 쉬워졌다

by조선일보 기자
2008.07.10 09:57:00

모노레일 타고 5분40초
솨악솨악… 향나무 숲이 바람에 춤추네

[조선일보 제공] '바람은 불리하고 파도가 험하여 사방에 한 점의 산도 없는 대해(大海) 가운데서 키질하듯 배가 요동하여 향할 바를 모르다가….'

좌우로 뒤뚱대는 쾌속선에 몸을 싣고 가다 보면 약 130년 전 이규원이 쓴 '울릉도 검찰(檢察) 일기'의 한 문구에 공감하게 됩니다. 서울서 아침 6시쯤 출발해 고속도로로 3시간30분, 험하기로 이름난 뱃길로 다시 2시간30분을 달리고 나서야 울릉도에 닿을 수 있습니다. 등산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엔 너무 피곤하고 숙소로 들어가 바로 눕기엔 먼먼 길 힘들게 달려온 시간이 아까운 순간, '태하·향목 관광 모노레일'이 4일 준공식을 가졌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7월 중 정식 운행을 시작할 모노레일 덕분에 절경(絶景)이 하나 더 늘어난, 동해 위 큰 섬 울릉도에 다녀왔습니다.

▲ 커다란 창 밖으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손잡고 그린 예쁜 수평선이 펼쳐진다. 태하 등대까지 올라가는 태하·향목 관강 모노레일은 7월 중 정식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맑고 바람이 센 날 바다는 투명한 파랑을 드러낸다. 시인 유치환이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이라고 불렀던 울릉도는 포항에서 217㎞, 동해 묵호항에선 161㎞ 거리다. 태하등대(정식 명칭 '울릉도 항로표지')는 한반도에서 뚝 떨어진 이 섬의 북서쪽에, 뭍에서 오는 배를 기다리는 듯 정갈하게 서있다.

태하등대로 가는 '태하·향목 관광 모노레일' 준공식이 열린 4일, 태하항 앞 풍경은 울릉도 '마을 잔치'를 연상케 했다. 긴 상에 차려진 보쌈과 나물 무침에 맥주 소주를 곁들이며 마을 주민 100여 명은 흥에 겨워 들썩였다. "지금까진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올라야만 등대를 만날 수 있었죠. 모노레일 타면 5분 밖에 안 걸려요.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울릉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멋진 풍경을 감상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두 칸짜리 모노레일이 산을 따라 구불구불 내려오는 사이 김광호 부군수가 자랑을 늘어놓았다.

모노레일의 문이 열리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햇볕에 달아 오른 얼굴을 식혔다. 3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와 사방을 감싼 푸르스름한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정원 40명을 꽉 채워 모노레일에 오른 사람들은 일제히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느릿느릿 산을 오르는 동안 산 밑 작은 방파제와 배들이 점점이 멀어져 갔다. 까불던 갈매기들은 어느 사이 조약돌만한 흰 점이 되어 바다 위에 뒹굴었다.

항구가 장난감처럼 작아졌을 때, 해안을 내려다보던 눈을 정면으로 들었다. 하늘과 바다가 팽팽하게 맞닿은 수평선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펼쳐졌다. 180도 시각(視角)이 바다와 하늘로 꽉 찬다. 김 부군수는 "모노레일 객차가 수평을 유지하도록 특수 설계한 덕분에 바다 풍경이 한층 눈에 잘 들어온다"고 했다. 시속 3㎞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노레일은 5분40초 후 올라 등대 앞에 승객을 내려놓았다. 바람을 기다린다는 언덕 '대풍령(待風嶺)'을 따라 등대로 향한 흙길을 걸었다.

태하등대가 서있는 절벽은 '배를 매어 놓고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라는 데서 '대풍(待風·'垈風'이라고도 쓴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람 많은 울릉도에서도 이 지역은 바람이 유난히 거센 것으로 유명하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태하등대까지 가는 길, 건조한 뙤약볕 여름 날씨인데도 바람 덕분에 "아, 시원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등대까지는 걸어서 10여분. 등대를 왼쪽에 두고 쭉 가면 바다로 난 흙 길이 호젓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울릉도 3대 비경'이라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은, 제대로 된 바다의 절경이 펼쳐진다. 방파제 두 개가 아늑하게 바다를 감싸고 있는 현포와 나무가 울창한 '향목령(香木嶺)'이 근사하게 어우러지고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 때문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사라져버렸다.

3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대풍감(垈風坎·본토로 가던 배를 묶어 놓던 구멍이 있는 언덕)의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도 놓치기 아깝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가하게 걸을 수 있는 푹신한 산책로다.

'이곳의 향나무는 바람이 강해 크게 자라지 못한다….' 안내문에 적힌 문구를 공책에 옮겨 쓰고 있는 순간 해일 같은 바람이 불어와 몸이 휘청 기울었다. 흙 길 좌우로 웅크리고 있던 키 작은 향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펴고 '솨악솨악' 파도 소리를 내며 잎을 까르르 흔들어댔다.

▲ 배가 들어오는 도동항 동쪽 행남해안 산책로에 있는 노천 식당에서 해산물을 즐기면 근사한 풍경이 덤으로 따라온다.

동해 묵호항과 포항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오전 10시 울릉도로 가는 배가 뜬다. 예약 필수. 연안여객선 인터넷 티켓 예약 사이트 www.seomticket.co.kr. 묵호항 발 성인 1인 편도 요금 4만9000원, 포항 발 5만8800원부터.

4일 준공식을 마친 태하·향목 관광 모노레일은 7월 중순쯤 정식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날짜가 유동적이므로 출발 전 반드시 울릉군 문화관광과에 확인할 것. 모노레일 탑승장은 태하리에 있고 탑승료는 성인 왕복 기준 4000원이다. 도동, 남양 등을 거치며 울릉도 순환도로를 도는 '우산버스'를 타고 '성하신당'에서 내리면 된다. 2시간에 한대 꼴로 버스가 있다. 울릉군 관광정보 홈페이지(www. ulleung.go.kr/tour)에서 시간표 확인이 가능하다. 우산버스 (054)791-7910.

울릉군 관광안내전화 (054)790-6454,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054)790-6389, 한진렌트카 (054)791-1337, 울릉택시 (054)791-2315, 울릉개인택시 (054)791-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