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대사관, 돌연 특파원 출입 제한…“대언론 갑질” 반발
by이명철 기자
2024.04.30 09:09:50
“하루 전 취재 목적 밝혀야 출입 여부 검토” 일방 통보
정재호 대사 ‘갑질 의혹’ 취재 두고 보안 문제라며 통제
베이징 특파원 일동, 성명 내 “취재 탄압은 국익 침해”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주중 한국대사관이 돌연 중국에 있는 특파원을 대상으로 대사관 출입을 통제해 논란이다. 이미 출입증을 발급받은 상태에서 국민 알 권리를 위해 대사관을 왕래하던 특파원들에게 하루 전에 취재 목적 등을 밝혀야만 출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특파원들은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의 언론 대상 갑질을 멈추라며 반발했다.
주중대사관은 지난 29일 베이징 특파원단 대상으로 “5월 1일부터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이 필요할 경우 최소 24시간 이전에 출입 일시, 인원, 취재 목적을 포함한 필요 사항을 대사관에 신청해야 한다”며 “신청 사항 검토 후 출입 가능 여부 및 관련 사항을 안내하겠다”고 통보했다.
베이징 특파원들은 부임 후 주중대사관에 인적 사항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는다. 이를 두고 전상덕 주중대사관 홍보관은 “그간 특파원 대상 주례 브리핑 참석을 위한 용도로 대사관 출입증을 발급했다”며 브리핑 외에는 대사관 출입 시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특파원들이 발급받은 출입증이 ‘브리핑 참석 용도’라는 점은 그전에 공지되지 않은 사항으로 사실상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을 ‘허가제’로 바꾸고 취재 목적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미국 워싱턴, 프랑스 파리 등 다른 대사관에서는 특파원들에게 사전에 출입 신청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 만큼 이번 주중대사관의 결정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주중대사관은 최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관의 직장 내 갑질 논란으로 외교부의 감사가 이뤄지는 등 논란이 인 바 있다.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언론매체들은 정 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사관을 찾기도 했다.
이때 한 방송사 소속 직원이 대사관 내부에 들어와 촬영을 했는데 주중대사관은 이를 ‘보안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그동안 대사관 내 주요 행사에서 이미 촬영했던 경험이 있는 인증된 직원이었다. 이를 두고 전체 특파원에 대해 출입 제한을 걸어버린 셈이다.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은 성명을 내고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 제한 결정은 정 대사의 독단적 판단과 사적 보복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정 대사는 개인의 갑질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자 공식 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방적이고 편향적이고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언론 보도”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같은 주중대사관 직원에 대한 갑질 논란으로 외교부 감사가 이뤄지는 기간 중 가해자로 지목된 정 대사가 본인의 주장을 펼치는 데 공식 홈페이지를 사용한 것이다.
정 대사는 지난 2022년 부임 후 한 언론사가 비실명 보도 원칙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1년 7개월 동안 월례 브리핑 자리에서 질문을 받지 않고 있다. 이메일을 통해 사전에 질문을 해야만 주중대사관에서 이를 검토한 후에야 답변하는 기괴한 형태의 브리핑을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 기자회견조차 사전에 질문을 접수받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질의응답이 오간다.
정 대사측은 ‘국익’을 이유로 전체 특파원들이 ‘비실명 보도 원칙’을 지켜야만 브리핑에서 질문을 받겠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통상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에서는 비실명 보도 방침이 있다고 해도 설명을 들은 기자들이 국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개 필요성이 있다고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 실명 보도하기도 한다.
특히 당시 정 대사에 대한 실명 보도는 취임 후 소회에 대한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정 대사는 이를 ‘국익’으로 표현하면서 사실상 언론에 대한 일방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들은 성명에서 “미중 경쟁이 전례 없이 치열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로 한중 관계가 변곡점에 놓인 상황에서 주중대사관이 특파원의 취재 활동을 지원,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통과 탄압으로 일관하는 현 상황은 심각한 국익 침해”라며 출입 제한 통보 즉각 철회와 기형적인 브리핑 정상화, 정 대사의 사과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