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해체론 확산에…혁신안 내놓을지 관심

by이진철 기자
2016.10.09 11:48:03

설립 55년 만에 존폐 위기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
대기업 기금모금 창구 비판
전경련 "조직혁신 고민 중"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설립 55년 만에 존폐위기를 맞았다.

전경련이 주도해 기업들의 기금을 모아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정경유착’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도 진보단체를 중심으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보단체는 물론 일부 보수단체와 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전경련 해체’ 주장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600여개 회원사를 둔 전경련은 설립 목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표방하며 재계의 맏형으로 불렸다. 초대 회장인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을 비롯해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구자경 LG 명예회장, 고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등 주요 재벌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서 주요 경제정책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4대 그룹 창업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고 2000년대 들어 2·3세 후계 경영체제로 전환한 대기업들이 늘면서 전경련 회장 자리 맡기를 꺼리기 분위기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GS 회장)은 2011년 2월 수차례 고사 끝에 전경련 회장을 맡았고, 이후 후임자를 찾지 못해 두 차례 연임했다. 허 회장은 내년 2월 임기를 끝으로 더 이상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주요 그룹회원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전경련이 상근조직인 사무국의 자체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등 내부통제 장치가 완전히 붕괴했고, 그 결과 외부의 부적절한 요구를 회원사들에게 강요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사무국을 이끌고 있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이슈만 쫓다 보니 전경련 본연의 역할과 멀어졌다는 얘기다.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해명했다고 믿어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 행동으로 두 재단의 사업을 잘 관리해 외압에 의한 게 아니라 경제계의 사업인 것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오는 12일과 14일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이 부회장이 정치권의 ‘전경련 해체’ 주장에 대해 어떤 반론을 펼지 주목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각계의 비판 여론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조직 혁신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1961년 7월 ‘경제재건촉진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재벌 기업들이 ‘부정축재자 처벌’을 피하는 대신 ‘경제재건에 헌신할 것’을 약속한 결과다. 이후 전경련은 군사정권 시절 정경유착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8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이 5공 청문회에서 밝혀졌고, 19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1995년 11월3일 전경련 회장단은 “음성적 정치자금은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불법정치자금 스캔들은 계속돼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많은 재벌이 연루됐다.

2011년에도 전경련이 주요 회원사들에 로비 대상 정치인을 할당하는 문건이 폭로돼 물의를 빚었고, 올해는 우익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이어 청와대 실세 개입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사건까지 연이어 터졌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 원장과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공동 성명에서 “전경련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형식적인 사과와 윤리선언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뿐 근본적인 자정과 개혁 노력은 도외시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의혹에 휩싸인 미르·K스포츠를 이달 내 해산하고 문화·체육사업을 아우르는 문화체육재단을 새로 설립한다는 수습책을 발표했지만 여야 대표 경제통으로 불리는 정치인들까지 전경련 해체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일 국감에서 “전경련은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게 맞다”면서 “법적으로 정부가 전경련을 해체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전경련 해체를 재촉하는 방법은 정부가 전경련을 상대 안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6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나라 경제 상황으로 봤을 때 전경련 같은 기구가 현재처럼 존재해야하느냐 라는 명분을 찾기도 어려운 때가 됐다”고 밝혔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도 당 원내정책회의에서 “전경련의 기능을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맡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