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소송 기각됐지만…`남성 편향` 실리콘밸리에 경종

by송이라 기자
2015.03.29 11:41:16

페이스북·구글·트위터 여성비율 20% 미만..'보이클럽'
최근 비슷한 소송 잇따라..IT업계 내 근로환경 문제 제기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성차별을 이유로 회사에 1600만달러(약 1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한 여성 기업인이 1심서 패소했다.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실리콘밸리는 일단 안도했지만, 실리콘밸리 내 여성 처우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촉발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직장 내 성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엘런 파오 전 KPCB 임원 (사진=USATODAY)
미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 배심원단은 27일 유명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PCB)의 전직 임원 엘런 파오(45·사진)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엘런 파오는 자신이 KPCB에서 근무했던 7년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되고 연봉도 차별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파오가 진급에서 누락되고 해고된게 여성 차별 때문이거나 소송을 낸 데 대한 KPCB의 보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남성 6명, 여성 6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단 판결은 처음엔 기각에 유효한 최소인원이 채워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표결에서 한 명이 뜻을 바꿔 결국 기각했다.

패소 판결 후 엘런 파오는 “나의 이야기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들었다”며 “내 사례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소송은 기각됐지만 남성이 지배적인 실리콘밸리와 여타 정보기술(IT)기업 및 스타트업 내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렸으며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혁신과 창의성으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의 별칭은 ‘마초밸리’다. 혁신과는 거리가 먼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직은 ‘보이클럽’으로 불린다.

실제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굴지 IT기업들의 여성 비율은 15~20%로 41%가 여성인 네이버에도 한참 못미친다. 엘런 파오는 남성 직원이 자신에게 성적 표현이 가득한 시집을 선물해 수치심을 느꼈으며 중요한 미팅이나 저녁자리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IT업계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수년간 꾸준히 비슷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마초적인 실리콘밸리 조직문화가 어제오늘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 여성 기업인들이 잇따라 파오 씨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것도 실리콘밸리의 뿌리깊은 남성위주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

IT기업 경영컨설팅을 하는 패러다임의 조엘 에멀슨 최고경영자(CEO)는 “파오 사례는 실리콘 밸리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며 “기업들은 보다 신중하게 근로자들을 챙겨야만 한다”고 말했다.

일부 IT기업들은 근로환경을 보다 여성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프리다 클레인 컨설턴드는 “파오 재판이 진행되는 최근 수주 동안 12개가 넘는 회사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회사들은 여성들에게 불리한 작업환경과 미묘한 편견을 바뀌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고 말했다.

엘런 파오 소송이 세간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비슷한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다.

최근 몇 주 사이 최소 2개 이상 실리콘밸리 내 성차별 관련 소송이 접수됐다. 페이스북 전 직원인 치아 홍씨는 회사가 자신에게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했다며 고소했다. 홍씨는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남자 직원에 대체돼 자신이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이번달 초에는 트위터도 전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고소당했다. 트위터에서 6년간 근무했던 티나 후앙씨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됐고 이의를 제기하자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에멀슨 패러다임 CEO는 “많은 이들이 IT 업계에는 단순한 남여차별을 넘어선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며 “최근 소송들은 IT기업 문화에 보다 잠재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