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대부' 남상수 남영비비안 창업주 별세

by함정선 기자
2017.02.09 08:32:55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9일 오전12시2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고(故) 남상수 명예회장은 국내 속옷산업의 ‘대부’로 불린다.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여성 속옷 사업을 시작했다. 속옷 산업이 전무했던 당시 속옷브랜드를 만들어 국내 대표 여성 속옷 브랜드로 키워냈다.

남상수 명예회장은 1950년대 여성들 사이에서 서양식 의복이 확산하자 좀 더 예쁜 맵시를 위해서는 여성 속옷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여성 속옷 시장을 개척에 나섰다. 고쟁이나 광목으로 된 속옷을 착용하던 당시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거들 등 현재와 같은 화운데이션?란제리를 소개함으로써 여성들의 의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대표 브랜드인 ‘비비안’을 비롯해 유통별, 아이템별로 다양한 브랜드를 육성하며 국내 여성 속옷 업계를 이끌어왔다.

남상수 명예회장은 한국 무역 산업을 일으킨 무역 1세대로도 손꼽힌다. 1954년 무역 회사인 남영산업을 설립하고 미국?유럽?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했다.

일본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 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고, 1980년대에는 미국 시장에 연간 800만장의 브래지어를 수출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여성 10명 중 한 명이 남영산업이 수출한 브래지어를 입었다는 수치가 나올 정도다. 1970년대에는 홍콩 스타킹시장의 30%를 점유했다.



남상수 명예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주목하기 전인 1992년에 이미 중국에 속옷 생산 법인을 설립했으며, 1989년 인도네시아에도 현지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두 법인은 미국과 유럽?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여성 속옷과 스타킹을 생산하고 있다.

남상수 명예회장은 한국 수출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출의 날 산업 포장(1973년)과 상공의 날 대통령표창(1975년), 동탑(1980년), 은탑(1985년), 금탑(1992년) 산업 훈장을 수훈했다. 1973년부터 24년간 한국 무역협회 부회장직을 맡았으며 한일 경제협의회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남상수 명예회장은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이 향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회사 창립 초기인 1976년에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를 설립했다.

남상수 명예회장의 호인 ‘연암’을 따서 이름 지은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과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수행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 사업과 교육기관을 지원하고 있다. 재단법인 연암장학회는 매년 2회씩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6000여 명의 학생에게 약 48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남상수 명예회장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월 11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