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국민이 왜 김영란법 지키나"…선물권고안에 성난 농어업계

by이명철 기자
2021.08.08 14:46:45

“강제성 없는 권고라지만 농축수산물 소비 위축 우려”
최근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세…“10만원 선물세트 벅차”
“코로나19 등 불확실성 지속…이참에 선물가액 올려야”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민간 부문에도 일명 `김영란법`의 선물 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적용한다는 소식에 농축수산업계가 즉각 반발하고 있다. 농어업계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데 민간 소비 위축을 부른다며 철회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앞으로 추석·설 등 명절에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향을 정례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에 따라 공직자 등이 일정 금액 이상 선물 받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다. 음식 3만원·경조사비 5만원·선물 5만원(농축수산물은 10만원)이 기준인데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이해관계가 있는 민간에게도 권고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농협유통 관계자들이 추석 선물세트를 사전 예약 할인판매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농협유통)


국내 최대 농업인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농축수산업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농축산어민 배려가 없는 청렴 선물권고안 시행 계획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농연 측은 이해관계가 등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해당 제도를 추진할 경우 사실상 모든 국민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고안이 비록 법적 강제성이 없는 윤리 강령이지만 본격 시행될 경우 국민에게 심리적 부담을 줘 농축수산물 소비도 크게 위축된다는 논리다.

축산업계의 반대 의견도 거세다.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우의 경우 10만원이라는 가격 기준의 부담이 더 큰 편이다.

전국한우협회는 이달 4일 성명을 통해 “청탁금지법 시행 후 급격한 소비 위축이 일어났는데 민간부문까지 범위를 확장해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역설)”라며 “권익위에서 설정한 민간 부문 우월적 지위와 이해당사자 범위는 국민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산업계에서는 한국수산총연합회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농수축산물 소비 위축을 가중시킬 민간부문 권고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권고안에 대해 “법적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민간 부문에도 선물가액에 제한이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는 농수축산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국내 수산업의 현실을 고려해 전향적인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권익위원회의 권고안 추진에 농축수산업계가 적극 반대에 나서는 이유는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일부 농작물이나 축산물은 작황 부진과 수요 증가 등으로 가격이 크게 올라 청탁금지법에 맞춘 명절 선물세트 구성에 고민이 많은 상태다.

전현희(왼쪽에서 두번째)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월 13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설 선물세트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국민권익위원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6일 기준 사과(후지·상품)와 배의 소매가격은 10개당 3만2544원, 5만3161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17.4%, 49.0% 뛰었다. 육류 중 한우 등심(1+등급) 1kg 소매가격은 같은 기간 10.0% 오른 13만1271원이다. 삼겹살 1kg 소매가격은 2만5839원으로 9.1% 상승했다. 수산물 중에는 고등어와 갈치와 한 마리 가격이 같은 기간 각각 19.2%, 11.9% 오른 3571원, 7093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청탁금지법 논란을 계기로 명절 때마다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향을 정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추석과 올해 설 명절에 농축산업계 피해 회복 등을 위해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를 한시 20만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농협중앙회·한국농축산협회·수협중앙회·산림조합중앙회 등 주요 농축수산단체장들은 지난 3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를 찾아가 명절기간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시 상향을 건의한 바 있다.

농협 관계자는 “이번 추석 명절기간에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농축수산물 선물가액을 20만원으로 상향할 것을 바란다”며 “명절 선물수요가 집중되는 농축산물의 특성을 감안해 명절기간 농축산물 선물가액 상향을 정례화하는 청탁금지법 개정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실제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시 상향은 판매에도 효과를 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설 연휴 전인 지난 1월 4~24일 농축수산물 선물 매출액은 1259억원으로 작년 설 같은 기간과 비교해 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범진 한농연 정책조정실장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외식 소비 부진, 학교 급식 중단으로 국내산 농수산물 소비 부진 문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청탁금지법상 선물가액 상향은 별도 사회적 비용 없이 국내산 농수산물·가공품 선물가액 소비 증진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에 선물가액 상향에 대한 입장을 지속 전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