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약진'..여성과 개도국 박사가 세계수학계 우뚝서다
by이승현 기자
2014.08.13 09:19:06
'남성'과 '미국·유럽' 주도의 세계수학계 구도에 변화..'최초' 타이틀 수상자 양산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Seoul ICM)에서 필즈상을 받은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세계 수학계의 기존 구도에 변화의 기류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리엄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가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최고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하면서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세계 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석학연구원의 경우 본래 브라질 태생으로 자국의 국립 순수응용수학원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필즈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미국과 유럽이 양분한 세계 수학계에서 개발도상국 위상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1977년생인 미르자카니 교수는 이란이 배출한 세계적 수학 천재로 현존하는 여성 수학자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 출신으로 첫 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는 고등학생 때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두 차례 수상했으며 지난 1999년 이란 명문인 샤리프 기술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대에서 2004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스태포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범식 고등과학원 교수는 “미르자카니는 하버드 대학원 시절부터 어려운 난제들을 술술 풀어내기로 유명해 그때부터 필즈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쌍곡기하학과 동역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특히 곡선들로 이루어진 모듈라이 공간의 부피를 계산하는 새로운 기법을 발견해 주목받았다. 이로써 우주의 모양과 부피를 정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또한 현대 물리학의 한 이론인 ‘초끈이론’에 대한 수학적 바탕을 제공할 수 있다. 초끈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입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string)이라는 이론이다.
그는 2010년 인도 ICM에서 초청강연을 한 데 이어 이번 서울대회에선 ‘리이론과 일반화’ 분야에서 한 단계 격상한 기조강연자로 선정됐다. ICM 기조강연자는 해당 수학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서울 ICM 조직위원회는 “그는 뛰어난 수학적 능력과 대담한 야심, 먼 곳을 내다보는 비전, 깊은 호기심 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아시아 출신의 필즈상 수상자는 모두 6명(일본 3명, 중국·베트남 1명, 이란 1명)이 됐다.
동력학 분야의 거장인 아빌라 연구원은 지난 2010년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수상이 강력히 점쳐졌다. 그는 필즈상 수상자 가운데 미국과 유럽(구소련 포함)을 제외한 나라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첫번째 수학자가 됐다. 그는 브라질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귀화했다.
그동안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출신 수학자들이 필즈상을 받기는 했지만 모두 미국 혹은 유럽에서 박사과정 등 고등교육을 받았다. 이를 감안하면 아빌라 소장의 이번 수상은 더욱 의미가 깊다.
브라질 수학계는 자국에서 교육받은 수학자의 필즈상 수상과 함께 차기 2018년 ICM 유치에도 성공해 축제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종해 고등과학원장은 “브라질은 유럽에서 예전에 수학을 받아들여 수학역사가 깊다”고 설명했다.
마틴 헤어러 영국 워릭대 교수는 확률편미분방정식에 대한 연구업적으르 필즈상을 공동수상했지만 당초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는 국제수학연맹(IMU) 기준 하위권인 ‘2군’에 속하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첫번째 필즈상 수상자가 됐다.
대수적 정수론 분야에 획기적 공헌을 한 만줄 바르가바 미 프린스턴대 석좌교수의 경우 올해 필즈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릴라바티 상 ’(수학대중화 공로자에게 수여)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아드리안 파엔자 박사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수학과 교수출신으로 공영방송 TV 등에서 일화와 인터뷰, 유머 등을 섞어 문제풀이에 응용하는 일반인 대상의 수학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의 저서인 ‘수학아 거기 있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국제 수학계는 그의 수학 대중화 방법을 이번에 인정했다.
금 원장은 “필즈상 수상자들의 업적은 워낙 최신이론이라 당장 실용화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순수수학인 정수론이 현재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작용에 필수가 된 만큼 (이들 이론도) 다양한 후속연구들을 통해 사회에 쓰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