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뉴프론티어)돌산 깎아 일궈낸 수리조선의 꿈
by조용만 기자
2009.12.08 10:26:04
中 물류허브 길목에 해외진출 1호 수리조선소 `우뚝`
돌산 허물고 도크 파내..한진해운 신성장동력 개척
첫해 실적 선방 내년 1억불 목표.."손해보는 장사 안해"
[상하이=이데일리 조용만 특파원] 조선소 뒤편은 거대한 돌산. 2단계 공사를 위해 남겨둔 부지 한켠엔 아직도 큰 돌기둥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터파기부터 지켜봤던 주재원들 회고는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고, 암반을 다듬어 건물을 올리고, 돌을 파내 도크를 만들었다. 그렇게 조성한 부지가 55만㎡, 여의도 공원의 3배다.
▲한진해운의 취산도 수리조선소(ZESCO)는 중국 해운·물류 허브인 상하이와 양산항의 바닷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
상하이(上海)에서 중국 최대 컨테이너항인 양산(洋山)항까지 동하이(東海)대교를 타고 차로 1시간. 양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1시간40분 파도를 헤쳐가면 취산도(衢山島)에 닿는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국 저장성(浙江)성 저우산(舟山)시 취산진. 섬 끝자락 `ZESCO` 간판이 내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진해운이 중국 순화해운과 합작해 만든 `절강동방수조선`(浙江東邦修造船) 유한공사. 회사명은 Zhejiang Eastern Shipyard Co.의 머릿글자를 땄다.
여객 터미널에 마중나온 송형용 재무부장은 "섬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다. 한국 기업중에 중국 섬에다 대규모 투자를 한 곳이 한진해운 뿐이니 배멀미를 하더라도 현장을 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웃었다.
바다서 봤던 정적인 풍경은 조선소 안으로 들어서자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타워 크레인의 기계음속에서 길이 300m가 넘는 대형 도크들이 위용을 드러냈다. 수리를 위해 도크안으로 견인된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묵은 때를 벗겨낸 선체 외부에는 새 옷을 입히는 도색 작업이 한창이다. 헬멧에 마스크로 무장한 인부들이 리프트에서 분사기로 페인트를 뿜어낸다. 건너편 수리안벽에 정박된 화학제품 운반선, 미로처럼 얽힌 파이프 사이로는 용접 불꽃들이 튀어올랐다.
| ▲ 도크안으로 견인돼 한창 수리가 진행중인 대형 컨테이너선. 조선소 뒤로 반쯤 무너진 돌산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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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조선은 한진해운이 차세대 신성장동력 육성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2005년 당시 자체 컨테이너선을 제때에 수리하기 위해 전용도크를 확보하자는 논의에서 출발했다. 진행과정에서 경비문제와 향후 사업성 등을 이유로 해외 수리조선 진출로 방향을 틀었고, 취산도에 조선소 부지를 확보하고 있던 중국 파트너를 만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2007년 중국당국 인가를 받은뒤 본격 공사에 들어가 올해 5월 시범작업을 거쳐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선박수리를 개시했다.
4년전 한진해운 해사본부장 시절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도해 온 당사자는 현재 ZESCO 2대 사장으로서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 나온 김명식 사장은 "수리조선은 손해보는 장사는 안한다"고 했다. 수리조선 자체가 수익성이 좋다는 말로도, 한진해운이 중국 수리조선 사업에서 반드시 이익을 낼 거라는 의지로도 들렸다.
올해 경기가 안좋고, 내년도 불투명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해운사들이 계속 수리를 미룬다면 내년이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올해 수리를 못한 배들이 많아 내년엔 수리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서완배 경영지원부장은 "국제항해법상 모든 선박은 2년6개월에 한 번씩 안전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정상 6개월간 수리를 미룰 수 있지만 (수리를) 안할 수는 없다"고 설명을 달아줬다. 9월부터 본격화된 선박수리는 올해말까지 40여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매출은 2800만달러, 출범 첫해 성과로는 예상을 웃도는 선방이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명식 사장 |
김 사장은 내년 목표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150척을 수리해 1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실제 수리하고, 경영을 해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온다"고 했다. 말투엔 자신감이 배어났다. 최근 상황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산항을 포함한 상하이 지역을 글로벌 물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잇따르면서 바닷길목에 자리잡은 취산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섬에 인접한 바다 수심은 14~15m. 1만톤급 이상 초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어 접근성도 우수하다.
시설과 장비면에서는 앞서면 앞섰지, 뒤지진 않다는 게 ZESCO의 자평. 가동중인 2개의 도크는 DWT(재화중량톤수) 기준으로 30만, 15만 DWT급이다. 길이는 360m와 310m. 2단계 공사에서 50DWT급 3도크가 완성되면 기(旣) 건조 선박중 최대규모인 1만3000톤급, 400m이상의 배도 담을 수 있게 된다.
장비는 80톤급 안벽 크레인과 32m 체리 피커, 4000마력급 터그보트, 고성능 공기압축기 등을 고루 갖췄다. 서완배 부장은 "현재 도크의 물을 퍼내는데 2~3시간 밖에 안 걸린다. 4~6시간씩 걸리는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도크작업에서부터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위로부터 수리조선소 조감도(왼편 제3도크와 오른편 수리안벽은 2단계 공사를 통해 완공될 예정이다), 2년전 진행된 터파기와 도크 공사, 그리고 1단계 공사후 본격 선박수리에 나선 현재의 모습. |
취산도 수리조선 사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당초 그렸던 그림은 연간 수리능력 400척 규모. 계획대로는 예정된 공사기한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중간에 그림을 수정했다. 1단계 공사를 통해 150척 수리능력을 갖추고 스타트를 한 것. 김 사장은 "필요없는 건 다 자르고, 수리 기본설비를 갖추고 일단 출발부터 하는 게 맞다고 봤다. 나중에 돈을 벌어가면서 재투자를 하자는 것이 당시 생각"이었다고 술회했다.
최근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 바로 2단계 투자와 주주사들의 협력. ZESCO는 지난달 중국과 일본 해운사들로부터 자본유치에 성공했다. 이들도 사업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ZESCO 입장에선 2단계 투자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주주사 저변을 넓혀 물량확보 기회를 잡은 게 큰 소득이었다.
김 사장을 포함한 ZESCO 주재원들은 요즘 해운경기 회복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글로벌 수준의 프리미엄 수리조선소`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2단계 공사를 통해 3도크를 건설하는 것이 선결과제. 부지는 마련돼 있지만 굴착부터 완공까지 8개월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최적의 착공시점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사장은 "3도크와 추가 수리안벽 공사가 마무리되면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톱레벨(top-level)에 올라서게 된다"면서 "경기만 좋아진다면 내년이라도 2단계 공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향후 영업전략과 관련해서는 "주주사들의 수리수요와 관련 배들로 100척은 기본으로 깔고, 50척 정도를 일본과 싱가포르, 독일, 홍콩 등지의 고급선박을 대상으로 마케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급선박이나 특수선박의 경우 수리비가 높아 시설과 장비, 기술력으로 승부를 건다면 매출과 수익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 저가 물량공세로 불황을 넘으려는 군소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도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김 사장은 "어려운 시기에 투자한 만큼 해운경기가 회복된다면 남보다 앞서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 수리조선 수요가 몰리면 1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걸로 본다"고 했다.
ZESCO는 한국 해운사가 해외에 처음으로 세운 수리조선소로, 글로벌 선사중 수리조선소를 직접 운영하는 곳도 한진해운이 유일하다. 돌산에서 출발한 수리조선의 꿈이 사업 다각화와 신성장동력 발굴의 성공적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