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허귀식 기자
2000.12.27 14:33:02
2000년 증권 시장에는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큰 손실에 따른 상처로 아직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증시를 둘러싸고 벌어진 큰 사건들을 정리해본다. ◇주가 급락과 대형사고 = 최대 사건은 주가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 대박 꿈을 안고 출발했던 용띠 해의 증시는 뱀꼬리가 되고 말았다. 거래소시장은 지수 1059로 문을 열어 반토막이 난 504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357조원에서 186조원으로 171조원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코스닥은 사상최저치를 경신했다. 300선을 넘보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50선대로 무너지며 영욕의 한 해를 마쳤다. 이런 주가급락은 정현준, 진승현 사건으로 이어진다. 동방금고의 불법대출을 자금을 굴리던 정현준씨는 금융감독원 국장을 자살로 몰고갔고 금감원의 신뢰를 흔든 대사건으로 비화했다. 정치권까지 자금수수설로 뒤숭숭했다. 금고의 출자자 대출 파문은 MCI코리아의 진승현 부회장 사건으로 이어졌다. 금고업계는 이런저런 악재속에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영국리젠트그룹이 출자한 리젠트종금은 유동성위기를 겪었다. 코스닥기업과 기업인의 부도덕성, 문어발식 확장이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됐다. 주가조작 사건도 빈발했다. 세종하이테크 사건과 진승현 사건은 시세조종이란 고질병이 낫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세종하이테크 사건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거액의 뇌물을 받고 증권사 직원 등과 짜고 벌인 작전으로 밝혀졌다. 투자자들의 돈을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펀드매니저가 작전세력과 결탁과 한 것은 투신운용사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대사건이었다. 우풍상호신용금고의 공매도 사건도 결국 대주주가 낀 작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가가 떨어지면 벌어지는 나타나곤 했던 불미스런 일들이 어김없이 벌어졌다. 증시 수준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대 유동성 위기 = 현대그룹은 지난 1년내내 뉴스의 초점이었다. 그룹분할을 둘러싼 정몽구-정몽헌 형제간 싸움,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 현대투신의 경영개선방안 등이 지면을 장식했다. 현대투신의 외자유치문제는 "진행형"이다. 특히 현대건설의 자금난은 지난 8월 경제팀의 교체를 불러왔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직전까지 가면서 현대건설은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현대건설은 지난 10월31일 1차부도까지 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31일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환란이후 구조조정의 중심에 섰던 이헌재 당시 재경장관이 자리를 떴다. ◇자동차업계의 재편 = 2000년은 한국자동차산업에서 일대 지각변동이 이뤄진 해였다.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매각돼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트럭 등을 생산했던 삼성상용차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대우자동차는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대혼란에 빠졌으나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98년 여름에 터진 대우 워크아웃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현대자동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제휴했다. 가장 큰 사건은 포드의 인수포기다. 6월말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대우자동차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이 큰 탓인지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자 실망감도 컸다. 시장전체가 출렁거렸다. 정책담당자에 대한 문책의 목소리도 컸다. 한국경제 전반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주식시장이 대세 하락기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이 때부터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것인지, 인수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업부문을 가져갈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GM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대우자동차 매각작업이 수월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자동차와 삼성자동차의 손실처리문제는 해를 넘긴다. 삼성자동차 부채 2조4500억원과 삼성상용차 부채 4000억원의 처리 문제는 채권단과 삼성그룹간 힘겨루기 속에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고 있다. 삼성그룹에도 2조8000억원은 그룹의 명암을 좌우할 변수다. 삼성자동차 부채를 갚기 위해 이건희 삼성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은 연내 상장이 물건너갔다. ◇퇴출과 A&D(인수개발) = IMF사태를 전후로 쓰러진 기업들이 폭증하면서 이들 기업의 처리가 지난 1년 증시의 관심이 집중됐다. 수많은 관리종목과 워크아웃기업을 둘러싸고 인수합병설이 난무했고 올해 처음 풍미한 "A&D"가 활발히 전개됐다. 관리종목의 주가는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수십배가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지난 11월3일의 2차퇴출기업 발표도 당시 증시를 사로잡던 메뉴다. 퇴출기업 명단을 수소문하는 증권업계 정보맨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청산 19사, 법정관리 10사, 매각 20사, 합병 2사 등으로 가닥잡힌 2차 퇴출발표는 알맹이 없는 발표를 위한 행사로 끝났다. 청산대상에 들어간 기업에 대해 법원이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정보기술로 무장한 투자자의 등장 = 투자주체별로는 개인투자자의 변신이 주목을 끈다. 사이버 매매의 급증이다. 10월말 현재 사이버계좌수는 364만개. 활동계좌는 41.5%에 달한다. 증권사들은 전체거래의 55%를 웃도는 사이버거래 고객을 잡기 위해 HTS(홈트레이딩시스템)개발에 돈과 지혜를 쏟아부었다. 수수료를 낮추는 경쟁도 계속했다. 데이트레이딩이 성황을 이루며 하루평균거래량의 46%에 달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어려운 기현상이 나타났다. 사이버투자자들은 새로운 정보의 샘물로 목을 축였다. edaily와 같은 리얼타임매체의 등장은 실시간정보의 대역을 넓혔다. 개인투자자들도 기관투자자들이 과점하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경제주체간 정보수용과 이에 대한 대응력을 높였다. 이같은 투자자의 등장은 IR(투자설명회 등)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기업들은 앞다퉈 홈페이지 등을 개설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기업들은 주주중시 경영을 강화했다. 투자자들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되기도 했고 대주주가 법정에 서는 일도 벌어졌다. 투자자들의 소송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법무법인도 생겼다. 이같은 투자자들의 변화와 증시내부여건의 변화는 전후장 구분 폐지, 점심시간 개장, 상장요건의 완화 등 제도변화로 이어졌다. 제3시장이 개설되고 코스닥지수선물 등을 도입키로 하는 등 시장저변을 넓히고 제도화하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됐다. 한국증권시장은 2000년을 전후로 질적 변화라는 분수령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