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 살해' 고유정 대법 선고…승빈군 父 "기적 일어났으면"

by손의연 기자
2020.11.05 08:34:13

고유정, 의붓아들 살해 혐의 무죄…대법원 오늘 선고
승빈 父 "복용하지도 않던 ''독세핀''이 왜 검출됐겠나"
"뒤집히기 힘들지만…경찰 초동수사 잘못 인정해야"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경찰의 부실 수사가 고유정의 2심 무죄를 만들었죠. 대법원에선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전 남편 A모씨를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 은닉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37)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5일 내려진다. 1심과 2심의 쟁점은 고유정이 의붓아들인 홍승빈(사망 당시 5세)군을 숨지게 한 혐의가 인정되는지였다. 하지만 고유정은 증거 불충분으로 2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과 고유정 모두 상고했다. 승빈군의 아버지인 홍모씨는 경찰의 초동 수사가 제대로 됐으면 고유정의 혐의를 밝혔을 거라며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홍씨는 고유정과 이혼한 상태다.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홍씨는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심경을 전했다. 홍씨는 “1심과 2심에서도 계속 고유정의 아들 살해 혐의가 논쟁이 됐지만 고유정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면서 “‘언젠가는’, ‘그래도’라는 접속사로 지금껏 버텨왔다”고 말했다.

고유정이 전 남편을 제주에서 잔혹하게 살해하기 두 달 전인 2019년 3월 승빈군은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숨졌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승빈군이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홍씨에게 수면유도제를 넣은 차를 마시게 한 후 승빈군의 뒤통수를 10여분 간 눌러 살해했다고 기소했다.

사건 이후 홍씨에게선 수면제 성분인 ‘독세핀’이 검출됐다. 고유정이 처방받은 약이었지만 고가 홍씨에게 수면제를 복용케 했다는 증거가 없어 법원에서 이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다.

성인의 다리에 아이가 눌려 숨지는 게 가능하냐는 의문도 계속 제기됐다. 여러 법의학자들이 법정에서 쉽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고 언론사들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연구소 교수는 법정에서 ‘사건 당시 함께 자고 있던 피해자 아버지의 몸에 눌려 숨졌을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고 답변했다. 부검의도 5세가량 유아면 당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처럼 직접 증거가 없다며 홍씨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상고심에선 고유정이 홍씨에게 ‘잠버릇이 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만든 정황과 고유정의 범행 전후 행적 등이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유정은 사건 발생 넉 달 전에 홍씨에게 ‘자면서 몸으로 누른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시에도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처럼 가장한 거짓 문자를 보낸 전력이 있다. 또 고유정은 승빈군이 숨진 날 밤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 깨어 있었다. 승빈군이 숨진 후에도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애기 아니니 얘기하지마”라고 말하며 슬퍼하지 않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적을 보였다.

홍씨 측은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한 법정 공방이 펼쳐진 것은 경찰의 수사가 처음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고유정 사건 2심이 끝난 후 홍씨 측 법률대리인인 부지석 변호사는 “경찰이 의붓아들 살해 사건에서 고유정이 2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는 데 도움을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부 변호사는 홍씨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경찰이 당시 사용한 자료가 역으로 2심에서 고유정을 무죄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부 변호사는 “경찰이 처음 홍씨를 피의자로 입건했을 때 증거로 삼은 사진은 홍씨가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있는 모습으로 고유정이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심지어 (홍씨가) 자고 있었을 때도 아니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도 결국 고유정을 기소했고 홍씨에 대해 혐의 없음 판단을 하지 않았나”라며 “하지만 고유정을 범인으로 입증해야 하는 경찰이 거꾸로 고유정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청주 상당경찰서가 홍씨를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하면서도 고유정을 입건하지 않은 것이 홍씨에겐 천추의 한이 됐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한 고유정은 승빈군 사망 후 두 달 뒤 결국 전 남편 A씨를 살해했다. 경찰은 2019년 5월 고유정의 전 남편 살인이 밝혀지고 여론의 질타를 받자 입건하지도 않았던 고유정에게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홍씨는 경찰이 자신들의 부실수사를 덮기 위한 수사가 이 상황을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부검에서 타살 정황이 나오면 나뿐만 아니라 고유정도 조사했어야 했는데 초반 부실 수사가 사건을 이 지경까지 가져왔다”며 “경찰은 이후 수사에서도 8개월 전에 온 고유정의 문자를 들이밀며 ‘당신 잠버릇 있다는데?’라고 몰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아이 아빠가 힘들어 할 시간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경찰과 싸워야만 했다”면서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어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걸 알지만 법원에서 기적이 일어났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