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나요
by경향닷컴 기자
2010.01.05 11:40:00
[경향닷컴 제공] 아직도 2009년을 살고 계십니까.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는 읽어나가기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문장에 어려운 개념이나 비유도 없지만, 한 페이지 넘기는 것이 쇳덩이를 달고 발걸음을 떼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장 사이엔 재가 뿌려져 있고, 표지 어딘가에서는 시신 썩는 냄새가 났습니다.
7일 개봉하는 영화 <더 로드>도 원작의 분위기를 닮았습니다. 비고 모텐슨(반지의 제왕)이나 샤를리즈 테론(몬스터) 같은 스타가 나온다거나, 대중에게 친숙한 매체인 영화로 옮겨졌다고 해서 한줄기 빛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2010년을 맞이하며 기분 좋게 볼 영화가 아니란 뜻이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세계. 아버지와 아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슈퍼마켓용 카트에 물건을 싣고 남쪽으로 향합니다. 곳곳에는 물건을 빼앗으려는 약탈자와 인육을 먹으려는 살인자가 도사립니다. 간혹 꿈 속에선 아내와 함께 했던 옛 세상이 떠오르지만 이 잿빛 세상에선 환상도 부질없습니다.
소설과 영화 속의 절망은 깊이가 깊습니다. 너무나 깊어 현실이 아니라 추상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작가는 세계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얼음과 재와 기아의 세계를 펼쳐 놓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펼쳐지는 묵시록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매카시가 70대를 넘어섰던 2006년 그는 자신의 아홉 살 아들을 보며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왜 노작가는 핵전쟁의 위협도 거의 사라진 이 세계에서 어린 아들을 보며 ‘허무의 글’을 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