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2.0)`ICBM 벤`, 글로벌 양적완화 불붙이나

by김윤경 기자
2009.03.19 10:17:29

美연준, 3천억弗 국채 직매입 등 양적완화 본격화
영국과 일본, 앞서 양적완화..日, 2000년대 초 회귀하나
ECB 등 곧 다른 중앙은행들도 뒤따를 전망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벤 S.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18일 시장의 기대에 부응한 선물을 내놨다. `하겠다`고만 했던 장기 국채 매입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고, 가계와 기업 신용확대를 위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도 크게 확대키로 했다.
 
한 칼럼니스트가 `헬리콥터 벤(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한 비아냥 섞인 표현)`이란 닉네임은 더 이상 부적절하다며 이제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벤`이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연준은 `엄청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앞서 영란은행(BOE)과 일본은행(BOJ)도 국채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모두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해까지 이뤄졌던 전세계적인 금리 인하 물결에 이어 이번엔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양적 완화 물결이 일고 있는 것.

이처럼 중앙은행들이 비전형적 수단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에야 말로 위기의 뿌리가 뽑힐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한껏 불러오고 있다. 주식 시장의 랠리는 이런 기대감을 잘 보여줬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1987년 이후 최대폭으로 내렸다.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7~18일(현지시간) 이틀간의 회의를 마치고 현재의 0~0.25%의 기준금리를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달엔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당분간(for some time)` 이를 유지한다고 했지만, 이번엔 `장기간(for an extended period)`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 벤 S. 버냉키 美 연준 의장

 
그러면서 앞으로 6개월 동안 3000억달러 규모의 장기 국채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국채 금리를 떨어뜨려 자금 시장 전반의 금리인하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낮췄던 12월 FOMC 성명서에서 매입 가능성을 시사했고, 1월 성명서에서 매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이를 본격화한 것이다. 매입은 다음 주 개시된다.
 
기업과 가계 신용 확대를 위해 실시키로 한 TALF(Term Asset-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 규모는 7500억달러 확대키로 했다. 총 1조2500억달러로 규모가 늘어났다. 늘어난 돈으로는 모기지유동화증권(MBS)을 추가로 매입하고 패니메이나 프레디맥 등의 기관채권 매입도 확대할 방침이다.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MBS 매입 등을 통해 `신용 완화(Credit easing)`에 나서고 있다며 양적 완화란 직접적인 표현을 삼갔다. 일본이 먼저 썼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 양적 완화 정책과 구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실업률 상승 등으로 경제 전망이 좀 더 어두워졌고, BOE의 앞선 국채 매입이 장기 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성공을 거두고 BOJ도 뒤이어 국채 매입을 확대하면서 자극을 받았을 공산이 커 보인다.

RBS의 앨런 러스킨 스트래티지스트는 "연준의 급전환은 필사적인 입장을 보여주며, 버냉키 의장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말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폴 대일즈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적어도 누구도 연준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언급했다. 




 
BOE의 국채 매입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연준도 이에 따라 국채 매입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BOE는 지난 4~5일 열린 통화정책위원회(MP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0.5%로 낮추면서 20억파운드(27억7000만달러)의 국채 매입을 개시할 것이라며 양적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BOE는 향후 석 달 동안 국채 매입을 포함해 750억달러의 양적 완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발표 전부터 영국 국채 가격은 치솟으며(수익률 하락) 기대감을 반영했고, 지난 11일 개시된 국채 매입 입찰엔 채권 매도자들이 쇄도해 청신호를 보였다.  英 국채매입에 매도 쇄도..양적완화 `청신호` 
 
  
BOJ는 지난 17일 금융통화 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 국채에 대한 월 매입규모를 1조8000억엔으로 증액키로 했다. 지난해 12월 정했던 것보다 4000억엔 늘어난 것으로, 시장 기대치의 배에 달했다. 
▲ 일본 기준금리 추이
지난 2001~2006년 실시한 양적 완화로 회귀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BOJ 총재는 이런 표현을 애써 거부하고 있다. 당시의 정책 실패에 대한 환기 때문인 듯 보인다.
 
BOJ는 이와 함께 대형 상업은행들에 대해 1조엔 규모의 후순위채 매입을 통해 자본을 투입(대출)해 주겠다는 방안도 밝혔다. 
 
이 역시 1996년에 한 번 했던 조치다. 당시 BOJ는 110억엔을 여기에 들였었다. 후순위 대출은 선순위 대출에 비해 금리가 높다. 그러나 회사가 망할 경우에 다른 대출보다 늦게 갚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BOJ는 시중 금리 수준으로 대출 금리를 정하겠다고 밝혔으며, 아직 금리는 결정되지 않았다.
 
기업 부문의 신용 확대를 꾀하기 위해 BOJ는 이미 회사채(CP) 매입에도 적극 나서오고 있다. 지난 1월 CP 매입 규모는 3조엔에 달했고, 이달 들어서도 1조엔 어치를 사들였다. BOJ는 지난 달엔 시중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주식도 최대 1조엔 규모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의 전형적인 수단, 즉 금리 정책을 더 쓸 수 없을 때 비전형적인 수단, 즉 양적 완화는 불가피한 수단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운용이 필수적이다.

특히 연준이 발권력을 통원해 국채 직매입에 나서게 되면 금융 시스템엔 다량의 달러가 공급된다. 
 
경색을 푸는 데 우선 순위를 둔 이 결정에 따라 달러화는 하방 압력을 받게 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형적인 인플레 헤지 수단인 금은 연준의 결정에 따라 급등했다. 이처럼 연준의 결정은 전세계 자금 흐름의 방향도 돌려 놓을 수 있을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일자 `렉스 칼럼`을 통해 양적 완화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FT는 금리 정책이 거시 경제 지표를 기초로 해서 가늠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목표 설정 등이 모호해 신호를 보내는 것(Signaling)이 쉽지 않고, 화폐의 유통 속도(velocity of money)를 재기 어려워 적정한 규모를 산정하는 것도 어려우며, 이미 국채는 유동성이 높다는 점에서 어떤 자산을 매입할 지를 정하는 것도 난제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의 계획이 시장에 신뢰를 심기보다 공포로 끝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런 방안은 신용시장과 경제가 막 살아날 때라야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끝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전세계 금리 인하 물결을 불러 일으켰던 미국이 양적 완화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면서 전세계적인 양적 완화 움직임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연준의 결정이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해선 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을 줄 것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또한 같은 북미 지역에 있는 캐나다 중앙은행과 중국은 물론 전세계가 뒤따를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한편 티모시 가이트너 장관은 수 일내에 금융권 부실자산 해소에 대한 계획을 밝히며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와 발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가이트너 장관이 밝힐 계획 가운데에선 연준의 TALF 금리를 낮추는 것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역할 강화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