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화채권 발행금리는 허풍.."못 믿어"

by이태호 기자
2008.02.13 09:55:00

'올인 코스트' 계약 악용..금리 낮추는 대신 他비용 높여줘
"기업의 실질 조달비용 파악 불가능..올인 코스트 공개해야"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국내에서 발행되는 외화표시 채권의 표면금리가 기업의 실제 자금조달 비용보다 지극히 낮은 수준으로 표시돼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기업이 투자자(주로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와 통화스왑(CRS·조달한 외화를 원화와 맞교환) 비용까지 아우르는 '올인 코스트(All-in-cost)' 지불 계약을 맺고, 이 한도 내에서 표면금리를 자의적으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금리를 낮추는 대신 다른 비용을 더 지불해 코스트 총액을 맞추는 방식이다.
 
특히 이 올인 코스트는 다른 발행 비용과 달리 금액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발행금리 만들기'에 쉽게 악용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신용등급이 'AA-(안정적)'인 GS건설(006360)은 국내에서 3년 만기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해 3억1000만달러를 조달했다. 표면금리는 '리보(LIBOR)+110bp(1bp=0.01%)'로 정해졌다.

그리고 이튿날. 국내 최고 신용등급(AAA)의 한국중부발전은 해외에서 5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 3억달러를 조달했다. 금리는 이보다 훨씬 높은 '리보+198bp'다.

양쪽의 가산금리 차이는 무려 88bp.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격차다.

11일 기준 민간채권평가 3사에 따르면 국내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와 '5년 만기 AAA 등급 회사채'의 수익률은 각각 6.36%와 6.26%. 만기가 2년 더 길더라도 AAA 기업의 금리가 AA-보다 10bp 낮다.
 
또한 현대백화점(069960)(AA-)은 지난달 리보+100bp에, 현대산업(012630)(A+)은 리보+140bp에 국내에서 외화 자금을 조달했다.

모두 한국산업은행(AAA)의 최근 해외 공모(10억달러) 발행금리인 리보+145bp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발행한 셈이다. 산업은행의 국제 신용등급은 무디스 기준 Aa3로 우리나라 정부(A3)보다 높다.
 

▲ 국내 발행의 경우 해외 공모에 비해 표면금리가 눈에 띄게 낮다(단 한국중부발전과 한국산업은행 채권 만기는 5년, 나머지는 3년)



국내 외화표시 채권 발행이 이처럼 해외 공모 대비 낮은 금리에 이뤄지는 배경은 회사채 인수자와의 독특한 계약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 공모 발행의 경우, 발행사는 투자자들의 입찰 등을 거쳐 발행금리를 결정한다. 이 때 금리는 신용등급과 회사채 인수 수요를 근거로 적정 수준에서 매겨진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발행사는 이와 별도로 통화스왑(CRS) 거래를 해 조달한 외화를 원화로 바꿔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행자가 부담하는 총 비용은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리보+가산금리'와 ▲CRS 계약 상대방에게 지급하는 'CRS 금리(원화를 받은 뒤 지급하는 원화 고정금리)+스왑피(swap fee, 통상 5~10bp)'로 구분된다.



하지만 국내 외화표시 채권 발행의 경우는 다르다.

발행기업이 회사채 투자자와 CRS 계약까지 함께 체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업은 가산금리와 CRS 비용을 한데 합친 '올인 코스트' 형태로 지불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한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 관계자에 따르면, AA 신용등급 기업의 경우 이 올인 코스트는 180~200bp(가산금리와 스왑피 등 포함, CRS 금리는 제외)에 달한다.

공개되지 않는 스왑피(혹은 별도 항목의 비용)를 높게 지불하는 대신, 공개되는 발행금리를 현격하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화표시 채권 투자와 CRS 계약을 담당하는 국내 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매력적인 표면금리를 원하는 고객들의 요구로 올인 코스트에서 가산금리의 비중을 (자의적으로) 축소하는 때가 종종 있다"면서 "표면금리를 낮출 때 기준은 '시장에서 너무 낮다고 의아해 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이러한 '올인 코스트' 방식은 표면금리 만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외표채 발행 기업의 '실질 원화 조달비용'은 'CRS 금리+가산금리'를 계산해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중부발전 측에서 밝힌 실질 조달비용(약 5.4%)도 CRS 금리(최근 5년물 기준 3.4%)+가산금리(198bp)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투자자와 합의해 가산금리를 자의적으로 줄이고, 기타 스왑 비용 등을 늘리는 계약을 체결한 경우 이러한 추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GS건설의 경우 같은 계산을 적용하면 CRS 금리(최근 3년물 기준 3.0%)+110bp, 즉 4.1% 수준의 금리에 원화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GS건설 관계자는 "원화 기준으로 국고채 수익률(11일 기준 3년물 5.12%)보다는 비싸게 조달했다"고 밝혔다. 가산금리와는 별도로 100bp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용의 정확한 규모는 알 길이 없다.

한 기업 자금팀 관계자는 "CRS 관련 비용은 계약 당사자 밖에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국내 발행 외표채의 표면금리는 믿을 게 못 된다"면서 "이 부분이 공개되기 전까진 실질 자금조달 비용을 파악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13일 오전 9시40분에 유료뉴스인 '마켓프리미엄'을 통해 출고된 기사를 재출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