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종구 기자
2006.04.10 10:15:42
[굿모닝신한증권 조중재] 요즘 딸 아이가 말이 부쩍 늘면서 하루 종일 조잘거린다. 말이 늘면서 생각도 크는지 무서워하는 것도 늘어간다. 최근에 딸 아이를 무섭게 하는 리스트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개미다. 왜 무섭냐고 물었더니 머리에 뿔이 달리고 몸이 두 개인 데다가 손도 없이 다리만 여섯 개란다.
아이들이 특히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형상이 다른 것을 몹시도 싫어하는가 보다. 그래서인지 종종 동물이나 사물, 심지어 이념이나 종교까지도 의인화를 시킨다. 법당에 모셔진 법신불은 불교의 진리를 인격화하여 형상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마저도 지구 안의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로 해석하고 있다.
경제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면 어떨까? 경제관련 데이터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종종 경제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가이아는 생물인 자신에게 적합하게 주위환경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또 자신의 생존에 심각한 위기감이 들 때 강력한 경고를 발현하기도 한단다. 경제 역시 자신의 생존과 목적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제주체들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까?
국내 통화정책과 관련하여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으며 이러한 거품의 원인으로 `과잉 유동성`을 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정책기관은 과다하게 풀린 유동성을 흡수함으로써 거품을 제거하여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게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람의 경우 신체의 중대한 변화를 통증이라는 형태로 외부에 표출시킨다. 성장과 같이 긍정적인 변화 뒤에는 `성장통`이 있고, 암과 같이 부정적인 변화 뒤에는 극심한 통증이나 각혈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통증을 접하고도 그 변화의 원인을 배제한 채 대증요법을 취해 오히려 긍정적 변화를 지연시키고, 부정적 변화를 촉진시키는 경우를 왕왕 접하게 된다. 경제라는 생명체가 발하는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6년부터 미국에서도 주식이라는 자산에 대한 버블논란이 그린스펀 의장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이후 98년 당시 자연실업률(NAIRU)로 생각했던 5%의 실업률이 하향 돌파되며 이러한 버블논란은 경제과열 논란으로까지 옮겨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연방은행의 금리인상에 대한 요구가 커지게 되었으며 심지어 연방은행이 통화정책을 너무 느슨하게 지속함으로써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마저도 대두되었다.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당시 연방은행은 대증요법을 취하지 않았다. 미 경제라는 생명체가 발하고 있는 신호를 긍정적 변화, 즉 생산성 혁명이라고 보고 오히려 이러한 생산성 혁명을 배양하는 병인요법으로 `신경제(New Economy)`라는 새로운 유행을 선도해 나갔다.
현재 국내에서 회자되는 `과잉유동성`은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잉여유동성`의 일부일 따름이다. 이러한 잉여유동성은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세계적 총수요 부진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 생명체의 생존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총수요와 총공급 사이에 디플레갭(deflation gap)이 존재할 때는 자연스럽게 자금의 회전이 둔화되고 이는 다시금 총수요의 추가위축을 가져옴으로써 궁극적으로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생명체는 이러한 생존위기에 처하여 강제적으로 유동성의 총량(stock) 자체를 급격하게 팽창시킴으로써 강제적으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나섰던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긴축에 대한 논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디플레갭이 축소되고 있는 만큼 경제생명체 역시 반대편의 위협, 즉 거품(bubble)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유동성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총공급은 계단식으로 상승한다. 총수요가 균형수준을 넘어 총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전세계적인 투자확대가 화두가 되며 자금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자칫 금리의 앙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라는 생명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자신의 가장 큰 병으로 투자부진을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경제` 역시 자신의 생존과 목적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제주체들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까? 즉, 각 개별 경제주체를 자극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사회전반적인 분위기의 변화로 이어지며 최적의 환경을 낳도록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고용회복/중소기업 살리기에 나선 정부의 정책적 의지, 격화되는 경쟁구도 속에서 신규 대출수요를 물색하는 은행의 노력, 위험자산에 대한 개별투자가들의 높아진 관심, 직접금융시장이 중심에 서는 자원의 배분. 어쩌면 이 모든 사회적 변화는 `한국경제`의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일런지도 모른다. 소위 국내의 `과잉유동성`마저도 투자급증시의 금리앙등을 막아 장기적인 투자확대를 이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예비유동성`인지도 모른다.
만약 `한국경제`의 노력이 투자확대를 겨냥하고 있다면, 경제주체들이 취하는 `과잉유동성`의 투자로의 유도가 아닌 유동성 자체의 긴축노력은 또다른 경고에 직면하지 않을까? 통화정책기관도 채권시장도 결국은 `한국경제`라는 생명체의 하부구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