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인생’들이 풀어낸 셰익스피어 마지막 희극

by경향닷컴 기자
2009.05.26 12:40:00

[경향닷컴 제공] 객석에 들어서면 잔잔한 아코디언 연주가 들려온다. 무대 뒤에는 마치 한 점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대여섯개의 침상이 희뿌연 조명 아래 놓여 있다. 간혹 오고가는 사람이 있으나 대개는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모습이다. 인생의 종착역 같기만 한 곳. 여기는 무연고 노숙자들이 살고 있는 요양원이다.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극 <템페스트>의 무대를 요양원으로 가져왔다. <템페스트>는 요양원 노인들이 선보이는 극중극으로 펼쳐진다. 무대는 단출하다. 요양원 풍경을 나타내는 무대 뒤 배경 빼고는 덩그러니 두 계단 높이의 사각형 무대가 전부다.

요양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원작 <템페스트>와 만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극을 인생의 막바지에 와 있는 무연고 노숙자들이 풀어낸다는 짜임새가 절묘하다.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삶에서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극중극 <템페스트>는 요양원 후원행사의 하나로 준비된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일어난다. 공연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최씨가 떠나게 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딸과 사위는 무슨 일인지 극진히 모실 것을 약속한다(최씨의 손도장이 필요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최씨는 요양원으로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꿈 같기만 한 해외여행의 소식을 알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요양원 식구들은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 그러나 이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최씨는 “다음번엔 꼭 프로스페로 역을 맡겠다”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요양원 식구들은 조금 전 <템페스트> 공연을 했던 무대 위에 앉아 최씨의 영정을 바라볼 뿐이다. 최씨는 정말 그가 들려준 것처럼 환상적인 여행을 다녀왔던 것일까. 아까 공연한 연극도 한낱 꿈은 아니었을까.

원작 <템페스트>는 친동생의 배신으로 무인도로 추방된 프로스페로가 마법의 힘을 얻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에 프로스페로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듯 스스로 마법의 망토도 벗어던지고 관객을 향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