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 끝 보이나 갈길 멀다…`전환점` 주목
by김윤경 기자
2008.03.14 10:16:51
S&P "서브프라임 상각, 전환점 돌았다" 분석
`전환점 인식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 있어
근본 치유 안돼 불안감은 당분간 증폭될 듯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서브프라임 부실에서 촉발된 미국 금융권의 위기는 점점 깊어지는 듯 보인다.
올초 구체화된 월가 투자은행들의 손실 고해에 이어 최근 헤지펀드 등의 마진콜(margin call) 위기, 칼라일 캐피탈의 부도 임박 소식까지 불안감을 더하게 했다.
하지만 이로써 바닥에 근접했다면 오히려 희망이 불거져 나올 타이밍이기도 하다.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는 드디어 상황이 전환점을 돌았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칼라일 캐피탈 부도 가능성에 급락했던 뉴욕 증시는 급하게 방향을 틀어 상승했다.
S&P는 13일(현지시간) `서브프라임 상각, 전환점 돌았다(Subprime Write-Downs Could Reach $285 Billion, But Are Likely Past The Halfway Mark)`는 보고서를 냈다.
그는 전세계 금융권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각 규모 예상치를 2850억달러로 기존 전망치보다 200억달러 상향 조정했다. 거주용 모기지 증권(RMBS)과 자산담보부증권(CDO) 등 파생상품들로 인한 상각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
S&P의 스콧 부기 애널리스트는 "우리가 보기에 긍정적인 소식은 전세계 금융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상각을 상당 부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린치, 씨티그룹, UBS 등 투자은행 및 증권사들은 최근 수 개월간 수 백억달러에 이르는 자산 상각을 했고, 이는 시장을 흔들리게 했던 게 사실. 이는 최근 헤지펀드 등까지 파급되고 있는 참이었다.
S&P는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산 상각이 이뤄졌고, 이것이 지난해 실적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S&P의 타냐 아자크스 애널리스트는 "대형 금융사들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보수적으로 가치를 산정해 왔다"면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정돼 관련 자산 가치가 회복된다면 이들 금융회사는 이득(상각손환입의 의미)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날 S&P는 무디스와 함께 미국 2위 모노라인인 암박을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제외하고 암박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로 유지한다고 발표했었다.
S&P와 무디스는 성명을 통해 "암박이 15억달러의 신규 자금 조달에 성공함에 따라 지난 수개월간 진행해 온 등급 하향 검토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부정적 관찰대상`은 향후 3~6개월 이내에 등급을 하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S&P와 무디스가 암박을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모노라인 사태가 당분간 일단락 됐다는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세계 금융시장이 신용위기의 탈출구를 확실히 찾아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다는 판단은 성급하다.
신용위기가 신용등급이나 업종 등을 망라해 계속 번지고 있다. 특히 최우량 등급 채권까지 매도 사태를 맞고 있어 이제 신용위기가 올 때까지 온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S&P의 진단은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전환점을 인식했다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 의회는 13일 주택차압(foreclosure) 급증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연방주택국(FHA)을 통해 30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채무에 대해 보증을 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재무부 채권 경매를 통한 획기적인 유동성 공급 조치를 내놓았다.
가시적인 효과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심리를 안정시키기엔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 종료`를 얘기하기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도 사실이다.
베어스턴스 유동성 위기설이나 칼라일 캐피탈 부도 임박 소식 등에서 보듯 신용위기로 인한 금융사들의 문제는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하나 둘 표출될 것이며, 이것이 단기적인 관점에서 불안감을 재차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S&P 등 신평사들의 채권 등급 하향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이에 따라 유발될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S&P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각 처리 종료가 금융권의 손실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용위기가 1분기나 상반기까지 지속된다면 `레버리지론`을 포함해 광범위한 부실에 노출돼 추가 상각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또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들도 미국 부동산시장과 다른 신용부문의 악화 여파를 상쇄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서브프라임 위기를 제대로 짚지도 못했던 신용평가사가 서브프라임 위기 진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꼬집기도 한다.
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의 찰스 로트블러트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S&P의 소식은 근시안적"이라면서 "S&P가 추정한 손실 규모는 10%밖에 늘지 않았고, S&P의 전망이 확실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