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실패 기업에 전가”…총선 후 물가 ‘폭등’ 우려 커진다

by한전진 기자
2024.03.17 13:45:00

‘과도한 이윤 추구’ 물가 압박 수위 높인 정부
내달 총선 눈치 보는 식품업계…“여전히 불확실성 커”
실질 효과보다 정치적 의도…‘관치’ 부메랑 될 수도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정부의 가격통제 정책에 대한 역효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식품업계 가격 인하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이면서다. 가격 담합 조사 등의 방법까지 거론된다.

식품업계는 협조를 내세우면서도 피로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칫 시장 왜곡으로 과거 이명박(MB) 정부의 물가 정책처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매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국내 19개 식품사를 소집한 ‘가공식품 물가 안정 방안’ 간담회에서 “소비자 관점에서는 기업들이 원재료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다면 반대로 하락 시기에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과도한 이윤 추구라는 비판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곡물 등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식품 가격은 여전히 높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과도한 이윤’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앞으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생품목의 담합 발생 가능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겠다고 예고했다. 특히 제보 등을 통해 구체적인 혐의가 포착되면 신속하게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도 경고했다.

다만 압박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인 곳은 CJ제일제당(097950), 대한제분(001130), 삼양사(145990) 등 제분 업계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국제 곡물 가격 인하를 꼭 집었던 만큼 압박감이 컸던 셈이다.

다만 이마저도 소비자 판매(B2C) 밀가루 인하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 많다. 한 제분 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논의 중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기업 간 개별 계약 때문에 B2B 시장에 공급하는 밀가루보다는 B2C 밀가루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 식품업계는 그나마 동결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정부 압박에 따른 시장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인건비, 임대료, 물류비, 에너지비 등 그동안의 제반 비용 상승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관련 비용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 곡물 등 원재료 하락을 곧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기존 비싼 가격으로 들여온 원료를 먼저 소진해야 해서다. 이 때문에 총선이 끝나면 그간 억눌려 왔던 주요 제품 가격이 한 번에 폭등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특히 다음달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지난 2월 말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를 4월까지 연장했다. 이 덕분에 전기 가스 요금은 지난해 5월 이후 추가 인상이 없었다. 하지만 4월 총선 후 이 조치가 종료되면 공공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는 곧 생산비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유가와 환율은 최근 다시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총선 이후에는 이런 상승 요인에 억눌렸던 인상분까지 더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역효과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1년 MB 정부는 라면, 쌀, 밀가루, 배추, 쇠고기 등 서민 밀접 품목 50여 개를 꼽아 업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당시 일시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지만 3년 새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20% 급등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물가 인상은 거시적으로 총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것이 원인”이라며 “개별 원재료가 내렸다고 해서 당장 기업이 물가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최근 압박은 경제 실패를 기업에 전가하려는 의도가 크다”며 “이런 ‘관치’ 물가는 과거 MB정부에 나타났던 것처럼 여러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