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나가라는 말, 남 일인 줄” 위중증 기도삽관 아버지의 사연

by송혜수 기자
2021.12.30 09:04:23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병실이 부족하니 이제 나가주십시오”

기도삽관을 한 채 간신히 버티고 있는 75세 아버지와 남은 가족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며칠 전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격리된 지 20일이 지났으니 병실을 비워줘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1일 경기도 평택 박애병원 집중치료실(ICU)에서 한 의료진이 코로나 감염병 환자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가족들의 사연은 이러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당초 경증 환자였으나 점차 중증, 위·중증으로 증세가 악화돼 한 달째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정부의 행정명령을 전달받았다.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격리해제 기준을 시행했다. 이는 증상 발현 후 최대 20일까지는 코로나19 격리병상에 입원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격리 상태에서 벗어나 일반병상으로 옮기거나 퇴원해야 하는 지침이다.

만일 이를 거부하면 코로나19 격리병상 비용 등 치료비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또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일반 병실로 옮기라는 명령을 위반한 경우 100만 원 이하 과태료도 추가로 부과할 수 있다. 코로나19 중환자실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에게 격리병상을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병상 순환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발은 거세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결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환자들과 남은 가족들은 위·중증 환자를 일반 병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덜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은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20일이 지나면 감염 전파력이 없기 때문에 격리 치료에 드는 고도의 의료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일반 중환자실 또는 병실로 전원·전실 또는 퇴원 조치하는 것”이라며 “의료진이 여전히 격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격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도 “중환자실은 격리 병실이니 인력이 2배 정도 더 소요돼서 의료자원 소모가 심하다”라며 “일반 중환자실로 옮겨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20일이 지나) 감염력이 소실된 환자를 계속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으면 의료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격리 치료 병실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가족들은 “(아버지가) 현재 기도삽관을 하고 너무 힘든 상태다”라며 “현재 저희 가족은 의료진들이 촬영해주시는 동영상으로만 아버지의 현 상태를 확인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상태에서 병원을 옮기는 것과 치료비를 자부담하라는 것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라며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너무 걱정스럽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지금까지 남의 일이거니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저희 가족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구나’ 하고 하늘이 내려앉은 것 같이 깜깜하다”라며 “결코 저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님을 모든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가족들은 “코로나 확진돼서 합병증으로 생사를 오가는 국민에게 정부는 병실을 비우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코로나 위·중증 환자의 병원 옮기는 문제와 치료비 일체를 힘없는 국민에게 떠넘기는 식의 행정을 바로잡아달라”라고 촉구했다.

이 가족의 사연은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현재까지 736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