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오토칼럼] 자율주행자동차와 손해배상책임의 귀속
by김학수 기자
2017.02.02 08:32:06
[이데일리 오토in 김학수 기자]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CES2017에서는 다수의 자동차업체들이 자율주행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2017년 자동차업계의 주요 화두가 “자율주행”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이 가져온 혁신을 이미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자율주행자동차가 가져올 새로운 혁신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자율주행자동차가 가져올 사회적·문화적 파급력은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를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하면 으레 기존 법규와의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듯 자율주행자동차에 있어서도 기존 규제와의 충돌은 상용화에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현행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운전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고, 자동차보유자로 하여금 자동차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함으로써 손해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운전자가 자동차의 운행을 완벽히 통제하는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현행법 상 교통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에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자배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데, 자배법에 의하면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이하 “운행자”)”가 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제3조). 여기서의 “운행자”는 운전자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통상 운전자가 운행자로 인정되지만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운전자가 아닌 자동차의 소유자, 임대인 등도 운행자가 될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운행자는, “사회통념상 당해 자동차에 대한 운행을 지배(운행지배)하여 그 이익(운행이익)을 향수하는 책임주체로서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로서, 여기서 운행의 지배는 현실적인 지배에 한하지 않고 사회통념상 간접지배 내지는 지배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2다73424 판결). 이때의 “운행이익”은 자동차의 운행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동차 임대업자, 명의대여자 등에게도 운행이익이 인정될 수 있다. “운행지배”는 자동차의 운행과 관련한 관리·운영의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현실적인 지배뿐만 아니라 지배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운행지배가 인정된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운전대와 운전석 없이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차 스스로 운전을 하는 형태를 떠올리기 쉬우나, 그러한 형태의 완전자율주행자동차는 도로 및 각종 기반시설과 자동차들 간의 통신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5~10년 내에 상용화될 가능성은 낮다.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 될 자율주행자동차는 운전자가 자동차를 직접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 SAE 기준 레벨 3~4 단계의 자율주행자동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운전자에게는 여전히 자동차의 운행에 대한 지배가능성이 있으므로 현행 자배법과 판례에 따른다면 운전자에게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테슬라 모델S의 오토파일럿 주행 중 사망사고에서 테슬라 측의 책임이 부정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자동차 제조사는 레벨 3~4 단계의 자율주행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자율주행기능은 운전보조장치에 불과하며, 운전자는 항상 차량 상태와 도로 상황을 예의주시하여야 하고 운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면책 가능성을 열어두려 할 것이고, 이 경우 해석만으로 차량 제조사에 운행지배가 있다고 보아 운전자의 책임을 배제하고 차량 제조사에 책임을 귀속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지금 단계에서 운전석과 운전대가 있어 운전자의 통제 가능성이 남이 있는 자동차에 대해 운전자의 책임을 배제하고 제조사에 사고 책임을 모두 부담시키는 방향으로 법규를 개정하는 것은 자율주행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절충안으로 자율주행 시의 사고에 대해 제조사와 차량 보유자에게 책임을 분담시키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으나, 운전자와 제조사의 책임 분담 비율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조사와 운전자 사이에 발생하는 구상금 청구 등 2차적인 법률 분쟁으로 인해 분쟁 해결 비용이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지난해 볼보자동차의 CEO가 자율주행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을 부담하게 될 것임을 약속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을 0에 수렴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자율주행기술이 발전한다면 자동차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사고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겠다고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구글이나 우버가 개발 중인 것과 같이 운전대가 없는 형태의 완전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해서는 탑승자의 책임을 배제하고 제조사 또는 운수업체에 사고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도기적 형태인 레벨 3~4 단계의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운전자에게 차량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운전자에게 교통사고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레벨 3~4 단계라 하더라도 자율주행 기능이 활성화 된 상태에서는 차량에 대한 운전자의 개입이 없거나 적어진다는 점에서 자율주행 중 사고에 대해서까지 운전자에게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운전자가 자율주행 중 발생한 사고임을 증명하면 자율주행과 관련한 시스템의 오류나 차량 자체의 하자 등이 없음을 제조사가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시킴으로써 운전자의 입증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자동차에는 자율주행 중의 사고임을 쉽게 증명할 수 있도록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주행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시키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실제 독일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에 주행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 시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하여 현재 국내에서의 논의는 주로 IT 및 보험 전문 변호사와 관련 업계 종사자 위주로 진행되고 있으며, 자동차업계나 소비자 단체의 관여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법률 문제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은 논의를 위한 논의 내지 탁상공론에 그치는 논의 위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으며 이는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 시 손해배상책임의 귀속 주체를 결정하는 문제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 및 보편화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업계 및 소비자 단체들도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었을 때에도 현재의 법규가 그대로 적용됨으로써 자율주행 중 사고임에도 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일은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
글: 법률사무소 제하 변호사 강상구
* 레이싱 트랙 주행을 비롯하여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상구 변호사의 [강변오토칼럼]을 연재합니다. 강상구 변호사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기업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고,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인 보쉬코리아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으며,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도 보유하고 있는 등 자동차와 법률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현재 법률사무소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으로 이데일리 오토in 독자들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