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3040]기억나나 R.ef 박철우, 오늘은 '추억 DJ'
by이성재 기자
2012.10.12 10:33:32
 | R.ef 박철우(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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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은구 기자] “요즘 음악은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멜로디 라인이 없어진 것 같아요. 너무 기계적이죠.”
19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R.ef의 맏형 박철우(48)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와 현재 대중음악의 차이를 이 같이 짚었다. 그 차이가 사람들이 현재의 박철우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박철우는 소방차 멤버였던 도건우와 ‘카펜터스’라는 LP바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LP를 바 벽면에 빼곡히 채워놓고 손님들에게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외 가수들의 다양한 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R.ef 당시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착용해 팀의 ‘카리스마’를 담당했던 박철우는 어느 새 흰 머리에 차분한 인상을 지닌 중년이 됐다.
“스티브 잡스를 닮은 것 같다”고 하자 박철우는 “외국인 손님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며 웃었다. 이를 틈타 “스티브 잡스도 애플 MP3플레이어 사운드의 혁신을 위해 애쓰면서도 집에서는 LP로 음악을 들었다”며 LP의 매력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손님들도 찾아와 LP를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하지만 주로 30~40대 직장인들이 많아요. 오후 10시가 넘으면 손님들이 꽉 차죠. 흘러간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예요.”
박철우는 “음악은 추억”이라고 했다. 30~40대가 추억을 찾아 ‘카펜터스’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그 손님들의 추억에는 R.ef가 한창 활동했던 1990년대가 있다.
 | R.ef 박철우(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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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는 1990년대에 대해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댄스음악이 본격화됐고 음반시장이 LP에서 CD로 전환된 시기”라고 설명했다. R.ef도 1995년 데뷔, ‘이별공식’, ‘상심’ 등을 히트시키며 1990년대 대중음악의 중흥기를 이끈 한 축이었다. 현재의 박철우는 그런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자신이 이끌었던 1990년대와 그 이전의 추억을 음악에 담아 선사하고 있는 셈이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를 시작했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친한 동생이 운영하는 LP바를 놀러 다니다 자신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수로서 무대에 복귀할 수도 있었다. R.ef로 함께 활동했던 성대현과 이성욱이 얼마 전 신곡을 내고 컴백을 할 때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1개월여 전에는 바 운영과 함께 성대현, 이성욱과 밤무대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수 활동은 좋지만 예능프로그램에 단발성 게스트로 출연하는 방송활동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예능적 ‘끼’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대현, 이성욱의 컴백에도 자신은 ‘서포터’를 자처하며 빠졌다.
그래도 R.ef의 팬으로 ‘카펜터스’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반갑다. 굳이 자신이 R.ef 멤버였다고 먼저 말하지는 않지만 우연히 바에 들어왔다가 알아보는 손님들도 꽤 된다. 박철우는 “R.ef로 활동했던 게 바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 박철우는 “처음에는 내 역할이 음악만 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장사를 해야한다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웃었다. 지금은 손님과 대화도 많이 늘었다. 박철우는 “혼자 오는 단골 손님들은 음악이나 가족, 심지어는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있는 지금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의 추억 여행은 이달 말 LP로 한국 가요를 틀어주는 일식 주점을 열면서 이어질 예정이다.
1984년 인순이와 리듬터치 멤버로 가요계와 인연을 맺었다. 국내 백댄서의 시초였다. 댄서와 나이트클럽 DJ를 하다 1995년 성대현, 이성욱과 R.ef 1집 ‘레이브 이펙트’로 가수 데뷔를 했다. 타이틀곡 ‘고요 속의 외침’이 점차 주목을 받더니 후속곡 ‘이별공식’, ‘상심’ 등이 연속적으로 히트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1996년 발표한 2집도 타이틀곡 ‘찬란한 사랑’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그해 100만장 판매를 돌파했다. H.O.T·젝스키스 등 아이돌그룹의 등장으로 인기가 점차 떨어지더니 1998년 4집 활동을 끝으로 팀을 해체했다. R.ef는 2004년 디지털 싱글 ‘사랑은 어려워’를 발표했지만 활동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