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딥’ 우려에도 中 부양책 머뭇거리는 이유는

by김겨레 기자
2023.06.25 14:27:25

경제성장률 전망치 내리고 침체 공포 커졌는데
부양책 7월 공산당 정치국 회의 후에야 나올듯
부채 압박에 인프라 지출도 기대보다 크지 않을 전망
금리 내려도 소비진작 효과 미미 "일본처럼 장기 불황 빠질 수도"

[홍콩=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올 1분기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로 반짝 회복했던 중국 경제가 2분기 들어 흔들리면서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중국 안팎에선 강력한 경기 부양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누적된 지방 부채 등으로 대규모 부양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 중심지 상하이의 모습. (사진=AFP)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다음달 7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후 경기 부양 패키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부양책에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와 계약금 비율 인하 등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 소비 관련 세금 감면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중국이 부양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중국 경제 회복이 2분기 들어 둔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분기 중국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4.5%의 경제성장률을 거뒀으나 올 4월과 5월 수출입·생산·소비·투자 등 경제지표는 일제히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16-24세 청년실업률은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 역시 3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하면서 미국 등과 달리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중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안팎에서 경기 부양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중국 당국은 대규모 경기 부양을 망설이는 분위기다.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는 지난 16일 회의에서 △거시 경제 정책 조정 △수요 확대 △실물 경제 활성화 △핵심 영역 리스크 관리 등을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부양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국무원은 경기 부양을 위해 새로운 조치들을 연구하고 있고, 적절한 시기에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항셍중국기업지수는 지난주 6% 이상 내렸다. 지난 3월 이후 가장 가파른 주간 하락폭이다. 골드만삭스, UBS,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최근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5∼6.3%에서 5.1∼5.7%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내놓는 부양책도 대규모는 아닐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중국 당국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위해 최대 1조위안(약 181조8000억원)의 특별 국채를 발행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지만, 골드만삭스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대규모 특별국채 발행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확산을 포함해 총 세차례 뿐이었다. 그 만큼 긴급한 시기에만 활용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부양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활용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질적 성장’과 거리가 멀기도 하다. 로이 그린 TS롬바르드 중국 부문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 국가주석은 질적 성장이라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으며, 입장을 바꿀 것 같지 않다”며 “추가적인 부양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중국이 지난 5년간 고수해온 점진적인 경기 조정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타오 UBS 이코노미스트도 “중국은 대규모 부양책 대신 인프라 지출을 소폭 늘리며 경제를 약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누적된 지방 정부 부채가 심각해 대규모 인프라 지출로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지방정부자금조달기구(LGFV) 부채가 66조위안(약 1경189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관련 컨설팅 기업 로디움 그룹에 따르면 LGFV 부채를 지고 있는 지방 정부 가운데 20% 만이 단기 부채를 상환할 여력이 있고, 나머지는 채무 불이행 위험에 놓여있다. 중국 정부로선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급한 불’을 끄는 데 투입할 공산이 크다. 중국 재무부는 지방 정부의 ‘숨겨진 부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전국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통화정책 완화도 신통치 않은 모습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달 들어 10개월 만에 단기·중기 정책금리와 실질 기준금리를 일제히 10bp(1bp=0.01%포인트)씩 인하했지만, 시장에선 인민은행의 금리 인하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데이비드 차오 인베스코 아시아·태평양 분석가는 “가계와 기업들은 부채 상환이 더 급한 상황이어서 금리 인하도 소비 진작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민은행으로선 미국과 중국의 금리 차이에 따른 자본 유출 압박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이달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5.00~5.25%로 동결했지만 중국 1년물 LPR 금리는 3.55%로 금리 차가 여전하다. 인민은행의 대출우대금리(LPR) 금리 인하 다음날인 21일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7.2위안을 돌파해 위안화 가치가 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연준이 하반기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경우 미·중 금리차 확대에 따른 환율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소비와 투자 부진 이중고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장기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며 “중국은 일본보다 정부 통제력이 강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붕괴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천천히 (일본과) 같은 결과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