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속사정] 어떤 민주주의

by김미영 기자
2019.05.05 15:12:42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실 박용규 비서관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실 박용규 비서관] 8년만에 소위 ‘동물국회’를 다시 불러온 패스트트랙 정국. 각 정당 및 계파간 이해득실을 떠나 한국에서의 대의 민주주의이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먼저 자유한국당을 보자.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의 주된 구호는 ‘좌파독재 저지’, ‘헌법수호’ 등이었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좌파 정당들이 득세하게 될 것이며, 헌법이 정한 ‘자유민주주의’가치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기에 여야가 합의를 통해서 처리해온 국회의 오랜 관행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중요한 반대 논리였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지역에 기반한 거대양당체제가 가져온 폐해는 오랜기간 지적돼 왔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이런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온 핵심 기제였다. 한쪽이 반대하면 결코 바뀌지 않는 제도. 오로지 합의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정치적 담합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현행 제도는 이런 양당의 국회 의석 점유율 마저도 왜곡해 왔다. 최소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소수정당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소수정당이 어찌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당만 있는가. 보수 정당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이번에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 동참해 우파 2중대 3중대 정당을 키우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라도 우파의 다양성이 확대된다면, 적어도 보수 정당이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캐스팅보터로서 논란의 핵심이 된 바른미래당도 살펴보자. 여러 쟁점들이 있지만, 바른미래당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역시 민주주의의 본질을 살펴볼 내용들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수의 의견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소수의견은 존중되지만, 이는 충분히 경청하고 다수의 의사결정에 필요한만큼 참고될 뿐이다. 자신들의 의사가 관철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종 결론에 승복하는 것 역시 다수결을 통한 의사결정과정의 본질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바른미래당은 소속의원들의 동의 아래 투표방식을 정했고, 다수의 의견으로 패스트트랙 추진을 당의 입장으로 정했다. 다수가 동의한 방식으로 투표를 했고, 그 결과가 나왔으면 비록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승복해야 한다. 이는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어떤 정치적 사안에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 그러나 이 정치인만이 그 사안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인의 정치적 신념은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공당이 다른 정당과의 합의를 추인하고 그 결과대로 실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당은 소속 정치인들의 신념을 꺽으라 강요할 수 없다. 다만, 다수결에 따라 정해진 당의 입장에 따른 의사결정을 위한 조치를 할 수도 있을 뿐이다.

더욱이 만약 정치인의 정치적 신념만이 모든 의사결정이 최종 판단 기준이라면, 사실 정당에서 과반, 혹은 3분의2 등등 어떤 의사결정 방식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소속 의원들의 정치적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될 뿐이다. 이는 또 역으로 정치적 결사로서의 정당을 통한 현대정치의 근본원리를 외면하는 것이 된다.

정당과 정치인은 최소한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막거나 민주적 가치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된다. 민주화 이후 30년의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독재는 말하기 쉽고 민주주의는 실천하기 어려운 세상이 돼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