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입제도서 배운다)③자율의 사생아 `자본주의式 카스트제`
by전설리 기자
2008.02.14 10:30:00
자율·시장논리 교육 시스템→계층의 고착화
학벌의 세습 `레가시`..끊이지 않는 논란
공교육의 붕괴..부시 NCLB도 `좌초 위기`
비공개 대입 전형 기준에 `속타는 학생들`
[뉴욕=이데일리 전설리특파원] "아이비리그 학비는 비쌉니다. 누구나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아직 흑인과 백인의 평균 소득 차이가 많이 나는데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낼 수 있는 부모는 흑인보다 백인 비중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들은 재정적 지원이 가능하고,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아이비리그의 레가시(legacy, 졸업생 자녀에 대한 우대 정책) 제도가 기회의 불평등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뉴저지 클리프튼에 거주하는 제임스 포우스키(71)씨는 이렇게 말했다.
뉴저지 에지워터 소재의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전형적인 아프리칸 아메리칸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초등학교 5학년까지밖에 교육받지 못했다. 본인은 기술학교에 들어갔으나 마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우리 부모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딸은 간호사다.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일찍 사별했다. 간호사 수입으로는 아들 둘을 모두 대학교에 보낼 수 없어 한 명은 대학에 보냈지만 한 명은 보내지 못했다.
`자본주의적 논리`에 근간을 두고 있는 미국의 교육제도는 세계 일류의 명문 대학들을 배출했지만 동시에 `지역별, 인종별 계층의 고착화`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대한 땅 덩어리만큼이나 지역별 격차가 크고, 다민족 국가 특성상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는 미국에서 자율과 자본주의 논리는 `불평등`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미국은 `문맹률 높은 선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같은 불명예를 씻고자 `노 차일드 레프트 비하인드(NCLB·No Child Left Behind)`라는 교육 개혁 프로그램을 실시, 공교육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또한 `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전형 기준을 비밀에 부치고 있는 대학들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애가 탈 지경이다. 비공개 전형 기준 때문에 당락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들이 형 기준을 바꾸고도 공지하지 않아 비싼 전형료를 들여가며 십여개 학교에 원서를 넣고도 모두 떨어지는 사례마저 나오기도 한다.
`억` 소리 나는 연봉자들이 즐비한 월가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고위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물러난 스탠리 오닐 전 메릴린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월가 최초의 흑인 CEO였다. 정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반대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대형 마트의 일용직 점원 가운데서 백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계산대의 90%는 흑인과 히스패닉 점원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인종적 계층이 존재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이같은 `부익부 빈익빈`의 출발점이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듯이 미국도 대체적으로 경제력에 따라 거주지가 구분된다.
경제력이 높은 중상류층은 도심 주변에 발달한 교외에 모여 사는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계가 대다수를 이루는 저소득 빈민층은 주로 도심의 집값이 싼 지역을 거주지로 한다. 이처럼 사회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주거지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재정도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미국 뉴저지주 놀우드 타운의 김경화 교육위원은 "교육 재정이 타운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의 교육 재정은 풍족한 반면,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의 교육 재정은 빈약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 재정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교육의 질적 차이로 이어진다. 학교 시설은 물론 교사의 질적 차이도 현격하다. 재정이 빈약한 지역의 학교에서는 교사의 이직률이 높고, 교사의 교수 과목이 대학에서 전공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재정이 풍족한 지역의 학교의 경우 상당수의 교사가 석사학위 이상을 갖고 있고, 근무 연수가 오래돼 교육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이처럼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교육 시스템 때문에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다. 비싼 대학교 등록금은 이들이 넘어야 할 두번째 산이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중인 박지영씨(26)씨는 "미국 주립대의 경우 기숙사를 포함한 학비가 1년에 2만달러 정도로 비교적 저렴하고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갖고 있지만 명문대를 포함한 사립대의 경우 학비가 4만~6만달러에 이르고 장학금 제도 등이 많지 않아 재정적인 기반 없이는 입학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예일대의 제프리 브렌젤 입학처장은 "미국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투입되는 자원 측면에서 크나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대학교 입학을 위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비 마련도 힘든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고등 교육기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토로했다.
미국 대학들이 대입 전형에 적용하고 있는 `레가시`는 계층의 고착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동문자녀들에게 입학의 기회를 주는 레가시는 주로 기부금 형태로 이뤄진다. 기부금을 통해 쌓인 재원은 학생들이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하는데 투자되고 소외계층 출신의 인재에 대한 등록금 지원 등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인식도 있다.
브렌젤 처장은 "예일대의 레가시 학생 비율이 15%"라며 "그들의 입학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자질 또한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레가시가 `학벌의 세습`이라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단지 부모가 동문 출신이라고 해서, 재정적인 여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우대한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논란 속에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레가시 비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조기전형을 폐지하는 추세다. 아이비리그 대학중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와 프린스턴 대학이 올해 조기전형을 실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정기전형만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자율과 시장 논리를 근간으로 한 미국 교육제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각종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미국의 학생들이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자 부시 대통령은 `노 차일드 레프트 비하인드(NCLB)`라는 대대적인 교육 개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전국 공립학교 3~8학년 학생들은 읽기와 수학 표준고사(Standarized test)를 치르도록 의무화했다. 매 학년말 학생의 시험성적은 물론 학교 평균, 교사 평가가 망라된 리포트 카드가 학부모에게 통보된다.
학부모는 이 카드를 바탕으로 자녀의 학교가 2년 연속 주 정부가 정한 적정 학력 수준에 미달할 경우 거주지 관할에 상관없이 자녀를 좀 더 나은 다른 공립학교로 전학보낼 수 있다. 학교가 3년 연속 적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면 학부모는 주정부로부터 연 500~1000달러의 바우처(Voucher, 일종의 쿠폰)을 지원받아 자녀에게 과외 및 보충학습을 받게 할 수 있고, 심지어 사립학교로 전학시킬 수 있다.
4년~5년 연속 미달하는 학교는 끝내 문을 닫거나 차터스쿨(Charter School, 지역 공동체나 학부모 연대 등이 정부와 일정한 학력유지 등의 계약을 맺은 뒤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계약학교)로 변신하게 된다.
그러나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전체적인 학업 성취도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이같은 NCLB는 각종 문제에 봉착하며 정권 교체시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장 비판 받는 부문은 바우처 프로그램. 민주당을 비롯한 전국교육자협의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미국교사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 등은 바우처 프로그램이 겉으로는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공교육에 쓸 돈을 사립학교로 보내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학교 교육이 표준고사 성적을 올리기 위한 교육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장 교사와 일부 교육학자들은 일률적인 표준고사를 위한 교육이야말로 프로젝트와 실험 위주의 미국 교육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며 부시의 개혁이 미국 교육의 기본 이념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석희 세인트 존스 대학 교수는 "NCLB는 하위 10% 학교들을 위한 제도"라며 "무너져가는 소외 계층의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문제점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NCLB의 시행으로 단순한 시험 문제에 맞춰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창의성과 종합 분석 등 고급화 영역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CLB의 빈약한 재정지원도 난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국교육자협의회는 "부시 대통령이 충분하지 못한 연방재정지원으로 NCLB 법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지역교육구를 대신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추진중이다. 특히 재정 지원은 형편없는데 반해 강요하는 사항이 많다보니 대부분의 주에서 법의 일부 조항을 따르지 않거나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주관의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자율적인 대입 전형도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철처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대학들의 전형 기준은 표준적인 가이드 라인이 없는데다 변경된다고 해도 공지 의무가 없기 때문에 당락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전형료를 물어가며 십여개 대학에 원서를 내고 있다.
김 위원은 "워낙 합격 예측이 불가능해 학생과 부모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십여개 대학에 원서를 넣고도 한 군데도 못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이는 분명 사회적인 비용 손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