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킬러규제” 언급한 화평법·화관법…기업 부담 어떻길래

by김응열 기자
2023.07.09 13:41:06

기존·신규화학물질 관리법…기업 비용·시간부담 대폭 가중
신규화학물질 등록에 47개 서류 필요…1개당 2700만원
유해성 구분 없는 획일규제에 400여개 시설기준 맞춰야
산업계 “규제 완화 환영…신제품 개발 적극 가능할 것”

[이데일리 김응열 김영환 이다원 기자] 화학물질 관련 기업 A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 도급시 도급신고를 해야 하는데 16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인원만 도급인원으로 신고할 수 있다. 화학사고 우려가 있는 작업은 모두 신고해야 하는데 인력 확보가 어려워 정비 작업이 늦어지곤 한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만드는 B사는 연구개발 및 시제품 준비 과정에서 소량의 화학물질이 필요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해당 물질 등록 면제를 위해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데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했다. 승인까지 3개월 이상 걸릴 예정이어서 시제품 준비에 어려움이 커졌다.

산업계의 이 같은 애로사항은 이르면 내년부터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정부가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사진=연합뉴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무조정실은 규제 완화를 위한 킬러규제TF 킥오프 회의를 열었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화학규제 철폐를 내건 만큼 킬러규제 해소 1호는 화평법과 화관법이 유력하다.

◇화평법·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심사하고 평가해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 종합적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에도 기업들은 화학물질 명칭과 제조·수입량, 용도, 성분 등 각종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해왔는데 더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는 기업들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화평법은 연간 100kg 이상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할 경우 등록하도록 규정했다. 유럽과 일본이 1톤, 미국이 10톤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국내 규제 강도가 세다.

서류 제출에 필요한 비용도 상당하다. 신규화학물질을 환경부에 등록하기 위해선 인체 및 환경 유해성 등 최대 47개의 시험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시험 기관에 테스트를 맡기거나 외국 기업이 보유한 기존 시험 자료를 구매해야 하는데 시험자료 확보에 필요한 비용은 약 2700만원이다. 매년 1500여종의 신규화학물질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 중 약 20%가 100kg~1t 범위로 등록된다고 가정하면 시험비용만 연간 약 83억원에 달한다. 오는 2030년까지 등록해야 하는 약 7000여개의 기존화학물질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염료안료 제조기업 관계자는 “최소 7~9종의 시험자료 생산에 드는 비용이 1000만원~3000만원, 시간은 4~6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차라리 제품 개발을 포기하는 게 나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 소재 한 표면처리업체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화관법도 기업들이 큰 부담을 느낀다. 유독물질 등 유해화학물질 사용 기업이 갖춰야할 취급시설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어서다. 화관법은 안전교육 인원 확보뿐 아니라 내진설계나 경보장치 등 413개의 시설 기준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 화평법에 따라 유해한 화학물질은 유해성 정도에 관계 없이 유독물질로 분류되는데, 유해성이 낮더라도 화관법에 따른 엄격한 시설기준을 맞춰야 한다. UN이 마련한 국제 기준은 급성독성·만성독성·환경유해성 등 3가지로 유독물질을 분류하지만 우리나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과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화관법상 획일적 기준 때문에 벤젠과 차아염소나트륨이 유독물질로 지정되면 이러한 화학물질이 들어가는 휘발유나 락스도 유독물질에 해당하게 된다”며 “신규 사업 진출에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화관법상 정기검사 주기도 개선 대상이다. 화관법은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정기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해마다 수수료 발생 및 검사 신청을 위한 서류 준비에 비용과 함께 상당한 행정부담이 발생한다. 자격증을 갖춘 전담 기술인력도 채용해서 유지해야 하지만 소규모 영세업체들은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

◇기업들의 부담은 통계로도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관련 대기업 120곳 중 46.3%가 복잡한 화학물질 규제 절차로 이행이 어렵다고 답했다. 과도한 비용지출이 33.9%로 집계됐고 경영 불확실성 증대(7.8%), 핵심사업·신규사업 차질(6%) 등의 순서로 많았다.

화학물질 규제 관련 애로사항 기업 설문조사.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이런 탓에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시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 등 경영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높아진 사회적 눈높이 때문에 규제가 완화돼도 자체적으로 깐깐하게 관리하겠다는 분위기지만 중소기업들에게는 비용 절감이 시급하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규물질 등록 기준이 완화되면 다양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데에 장벽이 낮아져 신제품 개발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며 “비용 부담에 민감한 중소기업일수록 규제 완화 혜택의 체감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