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르다…탈레반·IS·IS-K의 기묘한 역학관계

by김무연 기자
2021.08.29 12:58:43

탈레반, 아프간에 이슬람 정권 수립 목표
IS-K, 전세계 이슬람화 주장하는 IS에 충성
“미국과 협상은 배신”…카불 공항 테러 자행
IS, IS-K 등 지부 테러 행위로 영향력 유지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이 20년 만에 전면 철수하기로 하면서 아프간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현재 아프간 정세를 주도하는 것은 수도 카불을 탈환해 재집권에 성공한 탈레반이지만, 이슬람 국가(IS)의 지파인 IS-호라산(IS-K)이 카불 공항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가하면서 요주의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탈레반과 IS, 그리고 IS-K 모두 이슬람의 율법을 중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간으로 하는 무장 세력들이다. 외부에서 보면 이들 집단 간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이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상호간 행위를 비난하면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탈레반은 1989년 소련 침공에 대항했던 무자헤딘(게릴라 무장조직) 사령관인 무하마드 오마르가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세운 이슬람 극단주의 무력 단체다. 피폐해진 아프간에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파키스탄 북부 및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거주 지역 이슬람 신학생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단체명이 ‘탈레반(학생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1996년 내전을 종식하고 수도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했다.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을 도입해 과거와는 달리 인권을 탄압하는 과격한 통치를 자행했다. 이후 탈레반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를 비호하다 미군에게 축출당했지만, 20년 만에 미국이 철군을 결정하면서 수도 카불에 입성하며 정권을 재탈환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행동원리로 삼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파슈툰족 토착 군벌세력인 만큼 지상 과제는 아프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서방 국가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탈레반은 서방국의 주요 근심거리였던 아편, 필로폰 등 마약 문제를 근절한다며 자국 국민에게 마약 재료인 양귀비 재배 금지를 지시하기도 했다.

탈레반과는 달리 IS나 IS-K는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를 뜻하는 ‘칼리프’를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전역에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월스트리저널(WSJ)는 “IS-K는 초국가적인 칼리프 체제 수립을 목표로 하는 반면 탈레반의 야망은 아프간에 국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IS-K는 아프간 호라산 지역에 거점을 둔 IS 분파로 ISIL-KP로 불리기도 한다. 호라산은 이란 동부, 중앙아시아, 아프간,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BBC에 따르면 2015년 1월에 발족된 IS-K는 조직원들 대부분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과격주의자들로 구성됐다.



2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서 한 탈레반 병사가 폭탄테러 현장을 경비하고 있다. 이번 참사로 28일 현재까지 사망자가 170명으로 크게 늘었고 부상자도 1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AFP/연합뉴스)
어디까지나 아프간에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탈레반과 전세계의 이슬람 신정국가화를 꿈꾸는 IS-K의 충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IS-K의 경우 탈레반과는 달리 서방국가와 인도주의자에게까지 무차별 테러를 서슴지않아 정국 안정을 원하는 탈레반으로서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반면, IS-K는 탈레반이 미국과 협정에 나선 것을 두고도 이슬람교도의 의무인 ‘지하드’(성전)를 등한시하고 평화적 해결 방안 모색에 집착한다고 각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했을 때에도 알 카에다가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과 거래해 지하드 무장세력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이 두 집단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다. IS-K는 지난 26일 카불 공항에 두 차례 테러를 감행해 미군 13명을 포함한 190여 명을 숨지게 했다. 사망자 가운덴 탈레반 군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또한 카불을 탈환하며 지하 감옥에 투옥돼 있는 IS-K 지도자 중 한 명을 사살하면서 적대 관계를 분명히 했다.

향후 IS-K의 테러 행위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IS-K는 창립 직후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아프간 내 거점을 잃었다. 현재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며, 파키스탄 국경과 접한 아프간 동부 낭가하르주(州)를 주 근거지로 삼고 있다. 탈레반을 상대로 군사활동을 펼치려면 아프간이 지속적으로 혼란한 상황인 것이 이들로서는 유리한 상황이다.

세력 확장을 꾀하는 IS 또한 IS-K를 적극 지원하면서 탈레반과 적대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2014~2015년에 걸쳐 시리아와 이라크를 점령하고, 전 이슬람권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한 IS는 미군, 러시아군과 각국 정부군의 반격으로 현재 힘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다. 국가 형태로의 조직은 소멸했지만, 잔존 지부가 여전히 테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