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9.02.09 10:55:00
노력을 뛰어넘는 재능은 없다
하루하루 열정에 인내·끈기를 덧입혀라
[조선일보 제공] 빅뱅이었다. 지난 6일 조선일보 교육미디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다섯 청년들이 걸쭉한 '열정 덩어리'를 뱉어 내기 시작했다. 마치 서바이벌 게임처럼 목이 터지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경쟁한 이들이었기에 꿈의 도전기는 뜨겁고 생생했다.
어느새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빅뱅은 데뷔 과정부터 탄탄대로였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태양(21·동영배)은 "열심히 하는 것은 그저 기본일 뿐 잘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매일 12시간씩 춤과 노래, 웨이트 트레이닝, 외국어까지 포함된 일여덟 개의 레슨을 소화해야 했다.
체력적인 한계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매일 엄격한 평가를 받았고, 채점표는 연습실 거울에 늘 붙여졌다.
G-드래곤(21·권지용)과 태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YG엔터테인먼트(대표 양현석)에 들어와 6년간 연습생으로 지냈다"고 했다. G-드래곤은 룰라 뮤직비디오에 '꼬마 룰라'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발탁됐다. 그는 "양현석 대표의 성격상 실력을 인정받지 않으면 6년이 아니라 60년을 연습했다 해도 가차없이 탈락시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연습실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외로운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태양은 "연습생 시절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연습한 양과 비례하지 않게 실력이 늘지 않을 때에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대성(20·강대성)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가수라는 꿈을 키웠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핸디캡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부모님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 "벌거벗긴 채 집에서 쫓겨날 정도로 반대가 심했지만 시간을 두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허락을 얻었다"고 했다.
힙합에 빠져 언더그라운드에서 래퍼로 활동했던 TOP(22·최승현)은 소위 문제아의 범주에 들던 학생이었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외모와 힙합 패션으로 시선을 모았다. 노는 학생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도 했다. 중3 때 친한 친구의 사고와 연이은 외할아버지의 죽음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참기 힘든 감금(?)과 치열한 연습 과정을 통해 나도 몰랐던 오기가 발동했다"고 했다.
빅뱅의 최종 멤버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떨어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승리(19·이승현) 역시 다르지 않다. 광주에서 유명 댄스팀으로 활동했던 그는 춤이라면 일가견이 있었지만 "노래 실력이 형편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악보가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노래 연습을 거듭했다. "죽을 각오로 덤비고 기죽지 않으면 꿈도 결코 외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빅뱅을 두고 하는 비판 중에 YG엔터테인먼트의 치밀한 준비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G-드래곤은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이라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느 것 하나 공짜로 주어진 것 없이 멤버 각자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 냈다"고 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더 이른 나이에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TOP은 "정말 미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해서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공만 보고 가수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쉽게 결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인기가 많아질수록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대중의 관심이 된다. 행동 하나하나가 시샘 어린 평가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승리는 "비판이나 비난을 듣는 것은 분명 유쾌하지는 않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가수인 이상 냉철한 평가는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섯 청년들은 "힘들 때마다 연습실 벽에 붙여진 '가수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문구를 떠올린다"고 했다. 자만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G-드래곤의 말이다.
"빅뱅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고급 차를 타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생겼지만, 저 자신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겸손과 노력이라는 우리의 본질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해 지금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겸손해지고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머지않아 도태되고 뒤처진다는 사실을 말이죠."
평생 연습생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빅뱅. 어떤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그들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빅뱅을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몇 주 전 에세이 출간 소식을 듣고 출판사에 연락하자 소속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말만 여러 차례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남이 이뤄졌다. 청소년들을 위한 에세이인 만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알려왔다.
복병은 또 있었다. 송곳 꽂을 틈조차 없을 만큼 일정이 빡빡했기에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 다섯 멤버를 만난다는 것조차 경쟁이 돼 버릴 정도로 요즘 빅뱅은 연예계 최고의 '핫 아이콘'이다. 그간의 속 썩었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자를 마주한 다섯 사나이들은 너무도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