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대신 엔진이 뛰는 '먹빛 세상'

by오현주 기자
2012.11.19 10:05:55

장재록 ''가속의 상징'' 전
아트사이드갤러리 29일까지
수묵으로 채색한 자동차
산업사회의 욕망 표현

장재록 ‘다른 풍경-벤츠’(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모노톤의 어두운 배경에 클래식 자동차 한 대가 빛을 내고 있다. 사진이려니 다가가 보면 그림이다. 그것도 유화가 아닌 수묵화다. 면으로 된 천 위에 단지 먹만으로 밝기를 달리해 그려낸 육중한 ‘기계’다.

동양화 기법으로 현대의 첨단기기인 고급 승용차와 역동적 거리풍경을 그려온 동양화가 장재록이 개인전을 열었다. ‘가속의 상징’ 전이다. 드로잉과 평면, 설치와 영상 등 20여점을 소개한다. 작품의 특징은 ‘자동차’로 대신 끄집어낸 현대의 욕망. 자동차는 페라리, 아우디의 최신 모델부터 클래식 벤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역설적으로 극사실적인 표현방식을 씌운 것이 작가의 장기다. 수묵화라기보다 사진처럼 정교한 이미지를 내보인다. 종이에 덧댄 백양목 같은 천에 짙은 먹부터 묽은 연묵까지, 먹물의 농담에 따라 연한 회색부터 짙은 검정까지 7단계로 색을 반복해 올린다. 덕분에 무채색 특유의 색감에는 정교한 입체가 생생하다.



특유의 예술적 영역을 확장해 한국화의 가능성을 넓히고자 한 것이 이번 전시의 특별한 시도다. 철골구조를 품은 교각을 주제로 한 평면작품이 새롭게 등장했다. 현재와 미래,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등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두 개의 요소들이 교각으로 연결됐다. ‘Heart(심장)’가 새겨진 거대한 시멘트 큐브를 네모난 철골 구조물에 매단 설치, 또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망치와 드릴로 시멘트 큐브를 깨고 그 안에서 자동차 엔진을 찾아내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도 출품됐다.

가속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뜨거운 심장을 찾아내듯 작가는 과중한 콘크리트를 헤집으며 엔진 찾기에 골몰한다. 그러곤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동력기관을 거대한 시멘트덩이 속에서 건져내며 이 시대가 추구하는 무한한 에너지와 속도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평면은 현실과 과거를, 설치와 영상은 내가 생각한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표현이다. 현 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엔진이 미래 문화재가 될 것이란 의미를 뒀다.” 도시문명과 산업사회 한 가운데서 먹 묻힌 붓을 들고 선 작가의 말이다. 29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 02-725-1020.